[영화리뷰]

해빙
해빙
15년 전 미제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 북부의 한 신도시. 이 도시는 땅 위에 오른 고층 아파트 밑에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파묻혀 있는 도시다. 논밭과 고층 아파트가 공존하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주거지역은 묘하게 구분돼있어 왠지 찜찜함을 준다. 이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의심과 의구심을 자아내며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영화는 한강의 얼음이 녹는 4월, 머리와 팔, 다리가 없는 시체가 떠오르면서 시작한다.

주인공 승훈(조진웅)은 사채까지 끌어들여 서울 강남에 개업했던 병원이 망한 후, 선배가 경영하는 경기도의 한 도시로 온다. 계약직 의사로 전락해 자신이 속하고자 했던 곳과는 극과 극으로 다른 도시로 오게 된 승훈. 승훈은 치매아버지 정 노인(신구)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의 건물 원룸에 세를 든다. 어느 날, 정 노인이 수면내시경 중 가수면 상태에서 흘린 살인 고백 같은 말을 들은 승훈은 부자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된다. 한동안 조용했던 이 도시에 다시 살인사건이 시작되고 승훈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승훈을 만나러 왔던 전처가 실종되었다며 경찰이 찾아오는데….

영화 해빙은 배우 조진웅에 의한, 조진웅을 위한 영화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부터 `끝까지 간다`, TV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시그널`에서 보여줬던 다채로운 연기는 이 영화에서 절정을 보여준다.

조진웅은 그와 등식으로 연결시키는 남성성과 아드레날린이라는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의사라는 전문직도 처음이지만 단순히 직업의 설정을 넘어서는 변신을 하며 극을 끌고 간다. 시종일관 승훈의 시선과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에서 조진웅은 차차 드러나는 비밀에 맞닥뜨렸을 때의 그의 반응과 표정 변화로 자신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 의혹 속으로 관객들을 함께 데려간다. 바짝 곤두선 바이올린의 현처럼 팽팽하고 예민한 심리 상태, 누구도 믿을 수 없이 의심의 한 가운데 놓인 인물의 시시각각 변해가는 감정과 의심, 그리고 나름의 반격까지. 조진웅은 정중동의 섬세한 연기와 신경질적인 날선 이미지의 모습으로 기존의 그의 매력에 덧붙여 관객이 처음 접하는 다른 모습, 다른 인물을 만나는 조진웅표 연기의 종합선물세트를 보여준다.

영화는 단순히 스릴러만 담고 있지 않다. 영화 배경이 되는 공간은 많은 것을 해결하지 않은 채 개발과 경제라는 욕망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한국 사회의 대표적 풍경이다. 배경이 되는 도시의 음산함과 불편함은 승훈의 원룸 설정과 연결돼 영화를 보는 내내 공간적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에서 조진웅은 `나는 함정에 빠졌다`고 되뇌인다. 그를 진짜 함정에 빠뜨린 건 누구일까. 영화 오프닝에서 한강의 해빙이 감추고 싶은 것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조진웅의 갇힌 기억이 `해빙`되는 순간 영화는 섬뜩함을 안기며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울증으로 인한 프로포폴 중독으로 기억을 왜곡해왔던 승훈의 시선과 감정을 쫓아 드러나기 시작하는 비밀의 실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악을 끌어내는, 삶 자체가 서스펜스로 가득한 곳, 지금의 한국 사회를 투영시키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퍼즐처럼 조각을 맞추기 위해 장면을 `주석`처럼 붙여넣으면서 긴장감은 풀어지고 실소가 나온다. `특종:량첸살인기`에서 살인마로 분했던 김대명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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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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