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면서 마속을 베다. 공정한 법 집행이나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린다는 뜻이다.

위촉오의 삼국지가 대단원으로 치닫고 있던 228년 제갈량은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위나라를 공격했다. 제갈량은 마속에게 전력상 요충지 가정을 지키도록 한다. 마속은 제갈량의 의중을 미리 알아 행동할 정도로 총명했다. 그러나 뛰어난 능력 탓에 교만한 점이 문제였다. 제갈량은 가정의 길목을 지키기만 하라고 명령했지만 공명심에 불탄 마속은 섬멸하려다가 오히려 참패한다. 이 때문에 촉은 한중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제갈량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마속에게 참수형을 내렸다. 제갈량이 법치주의를 중요시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사를 들으며 `읍참마속`의 고사가 떠올랐다. 이 재판관은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法之爲道前苦而長利)"는 중국 전국시대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서인 한비자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8명의 재판관이 모두 탄핵을 인용한 결과는 언뜻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헌재 구성 방식 때문이다. 9명의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3인을, 국회가 3인을, 대법원장이 3인을 인선한다. 국회는 보통 여 1명, 야 1명, 여야 합의 1명을 추천한다. 그러나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당 7명, 야당 1명, 중도 1명이라고 볼 수 있다. 8인 헌재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인선한 이정미 재판관과 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여야 합의로 추천된 강일원 재판관을 빼면 보수 성향이 5명이다. 또 경상지역 출신은 4명이다. 아마도 이같은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은 5대3이나 4대4로 탄핵 심판이 기각될 것으로 내다본 듯 하다.

그러나 이같은 성향 분류는 헌재의 본질을 모르는 판단이다. 헌재는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다. 마치 판타지 영화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성물을 지키는 기사단과 같다. 그들은 헌법 수호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재판관들 중 촛불집회가 마뜩잖거나 박 전 대통령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탄핵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헌법의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는 `읍`하더라도 `참`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이번 심판에서 헌재가 문제 삼은 부분은 최순실의 국정 개입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위배했기 때문이다.

취재2부 이용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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