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한 전쟁

1989-1990년 동서 냉전의 종식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 과연 인류는 전쟁의 위협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는가? 평화로운 세계 공동체의 이상에 보다 가까워졌는가?

다시 격화된 중동 및 근동(서아시아)에서의 다양한 전쟁들, 발칸과 우크라이나 등 해체된 동구 공산주의 국가 지역에서의 내전과 게릴라전, 9·11 테러에서 최근 IS의 전방위적 테러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전쟁 개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전쟁폭력들 앞에서 세계 사회는 당혹해하고 있다.

이 책은 그 형태가 마치 파편처럼 불규칙적이고 소규모로 수행되는 최근의 전쟁들을 고전적 전쟁 유형 즉, 영토를 가진 대칭적 국가들이 정규군을 동원해 치르는 전쟁에 비춰 파악하지 말고 전쟁폭력 `진화`의 결과로 생겨난 새로운 전쟁 모델로 보자고 주장한다. 고전적 국가 간 전쟁의 마지막 사례는 1980-1988년의 이라크-이란전쟁,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전쟁이다. 이 `파편화한 전쟁`은 `전쟁의 민영화`, `전쟁폭력의 비대칭화`, `전쟁의 탈군사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셋은 모두 함께 일어난다.

전쟁 문제에 관한 한 `움직이는 1인 싱크탱크`라 불리는 저자는 20세기 양차 세계대전에서 21세기 현재의 테러리즘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전제가 되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조건과 자원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추적하고, 그 변화와 21세기 전쟁폭력의 양상은 서로 어떤 상관이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전쟁폭력에 가능한 현실적인 대응 방식은 무엇인지 탐색한다.

이 전쟁들은 근세 초기 유럽에서 스페인 국제법학파와 네덜란드 법학자 휴고 그로티우스(휘호 흐로티위스)가 발전시킨 `전쟁 아니면 평화`, `국가 간 전쟁 아니면 내전`, `전투원 아니면 비전투원`이라는 이항적 질서체계를 벗어나는 데서 `하이브리드 전쟁`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이 새로운 전쟁에는 선전포고도 평화협정도 없다. 대신 성명과 회담이 반복되고, 그에 따라 폭력 사용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축소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격화될 뿐이다. 이와 같은 전쟁들은 그중 한 전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렵다. 전쟁이 어떤 단계에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그 결과 우리가 지금 전쟁집단을 상대하는 것인지 평화집단을 상대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게 됐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형식의 전쟁폭력들과 마주하고 있다. 이호창 기자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장춘익·탁선미 옮김/ 곰출판/ 476쪽/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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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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