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황홀한 블랙

검은색을 볼 때 우리는 대부분 슬픔과 상실로 가득한 장례식장의 상복처럼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스마트폰 등 최신 전자기기에서의 검은색은 모던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정의처럼,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은 빛의 파장으로 분류되는 색깔 스펙트럼에 안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새까만 물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완벽한 검은색이라 할 수 없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에서 분열된 상징이자 매혹의 색이기도 한 `블랙`의 탄생과 변주를 집대성하고 있다. 완전한 색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검은색의 모호한 특성은 시대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도구 및 상징으로 활용되어 왔다는 것. 15세기 부르고뉴 궁정의 검은색은 왕권을 상징했고 20세기 샤넬의 리틀블랙드레스에 사용된 검은색은 세련미의 극치로 해석된 것처럼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변주되는 블랙의 모습을 추적해나간다.

또 검은색이 인종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된 관습을 되짚어보면서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과정에서 어떻게 검은색의 부정적 연상을 활용했는지 알아보는 동시에 카라바조, 터너, 라인하트 등 수많은 화가와 디자이너들이 검은색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떤 상징으로 활용했는지 안내한다.

이와 함께 검은색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꿰뚫어보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어둠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된 `검은색`은 한동안 인간의 힘을 압도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힌두교 경전에서 검은색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됐다. 죽음과 붕괴의 색이자 모든 색을 초월하는 신성한 기운을 지닌 색은 사람의 잘린 머리를 들고 다니는 창조와 파괴의 신 칼리, 검은 몸을 한 애욕의 신 카마 등 `검은 신`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검은색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어로 `검은(melan) 담즙(choly)`, 즉 멜랑콜리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해 지난 2000년 동안 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은 인체에 흑담즙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이 단어는 슬픔과 광기의 기질로 여겨졌으며 현재까지도 `우울`, `우울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책은 성서의 `검은 동물`에서부터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그리스인의 검은 배`,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속 `검은 보석`, 뉴턴의 `광학` 속 실험 장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록을 인용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검은색의 흐름을 살펴본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신화, 의학, 문학 등 시대의 흐름 곳곳에 존재하는 검은색의 흔적을 근거로 이것이 하나의 색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 역사 전반에 관한 기록임을 강조한다.

기나긴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블랙의 여정을 담은 이 책은 독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박영문 기자

존 하비 지음·윤영삼 옮김/ 위즈덤하우스/ 580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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