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네팔에서는 가뭄이 이어지자 여성 농사꾼 200여명이 나체로 밭일을 하며 비를 기원했다. 2004년 인도 북부 여성들도 가뭄이 몇년째 지속되자 밤에 몰래 나와 옷을 벗고 밭을 갈며 기우제를 지냈다.

여성들이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비의 신 인드라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수세기전부터 계속된 이 풍습은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남자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옷을 걸치지 않고 완전 나체로 밭을 갈면 엉큼한 신이 비를 선물로 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도 옛날 경주지방에서 무녀들이 버들가지로 만든 푸른 고깔 모자를 쓰고 춤을 추면서 마을을 빙글빙글 돌았다. 동네 아낙들은 키에다 물을 부어 무녀들에게 뿌리면서 단비를 내리게 해달라며 빌고 또 빌었다. 하늘이 `나체기우제`에 감복해 농작물을 심기에 충분한 비를 하루 빨리 내려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다.

태종 임금 15-16년에는 유난히 가뭄이 잦았다.

당시 이를 두고 민초들 사이에선 "재상 하륜이 제도를 많이 바꾼 데 대한 하늘의 분노"라며 가뭄이 들면 하늘이 정치 잘못하는 위정자에게 내리는 벌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륜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천재(天災)가 끊이지 않자 태종은 "하륜이 죽고 없는데도 재앙이 생기니 이것은 하륜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부덕한 까닭"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태종은 세종 4년에 승하하면서 "가뭄이 이렇게 심하니 나 죽은 뒤에 반드시 이날만은 비가 오도록 하겠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천재지변도 본인의 탓으로 여기며 백성의 고충을 헤아린 것이다.

극심한 봄 가뭄으로 충남 서북부지역 8개 시 군의 생활, 농업,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보령댐 저수율이 17일 기준 11.3%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제한급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는 제한급수가 실시된 2015년의 18.9%보다 7.4%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현재 `경계`단계인 가뭄이 `심각`단계로 격상될 경우 8개 자치단체의 제한급수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각 지자체는 생활 속 물 절약 실천을 당부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망국의 길로 접어든 조선왕조가 `가뭄전쟁`으로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잃고, 국정운영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정부와 국회는 잊어서는 안된다. 원세연 지방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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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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