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청소년 대상 수상 보문고 하연철·정희헌 학생

`T자형` 인재가 주목받은 세상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넓은 지식을 갖췄으면서도 특정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뜻한다. 대입 학생부 중심 전형은 이런 인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이 그렇다. 물론 오해도 많다. `학종 전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100시간 넘는 봉사시간, 분야를 가리지 않는 동아리 활동, 사교육에 의존한 소논문 및 R&E 등에 파고들기 십상이다. 하지만 학종 전형의 무대는 `학교`와 `교실`이다.

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좋아하는 학문 분야에 빠져들면서 성장하고 심화해 나가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학종 전형이다. 또 시험에 나오지 않지만 더 알고 싶어서 자료를 찾고, 전공도서를 읽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대학에서 심화된 공부(전공)를 하기 위해 고교 3년 동안 교과 심화를 한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 학종 전형이다.

최근 대전시가 발표한 `청소년대상`을 차지한 학생들은 주목할 만하다. 각 분야에서 자신 만의 의미와 가치에 매진해 성취를 냈다. 대전지역 중·고생 7명이 선발돼 상을 받았다. 특히 대전보문고 3학년 하연철, 정희헌 학생은 각각 `도전·성취분야`와 `과학분야`의 수상자가 됐다. 두 학생의 스토리를 통해 학종시대가 원하는 `진짜 공부`를 알아봤다.

◇고생물학자 꿈꾸는 공룡덕후의 도전(하연철 학생)

남자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빠져 들었을 마성의 킬러 콘텐츠는 단연 `공룡`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뒤에도 공룡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과학분야에서 대전시 청소년대상을 수상한 하연철 학생은 고생물학자가 꿈이다. 당연히 공룡이 최고의 관심사다. 자신이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공룡으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열망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으로 시작한 봉사는 지질박물관 전시해설 봉사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주관하는 각종 과학행사와 공룡유적지 탐방, 청소년체험학습 인솔자로 나서면서 꾸준한 재능기부를 펼쳤다. 그 사이 연철 학생은 지역내 `어린이 공룡 덕후들`과 학부모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지질박물관의 전시물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부단히 책과 자료를 찾고, 외국 논문과 학회 세미나까지 찾아 다닌 결과다.

연철 학생이 고생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데는 멘토이자 롤 모델인 이융남 서울대 교수(전 지질박물관장)의 영향이 크다. 이융남 교수는 공룡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공룡 및 고생물 연구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 올렸다. 공룡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연철 학생과 이융남 박사의 인연은 함께 경남 고성으로 떠났던 `공룡탐사`다. 이 때의 경험이 오래 전 한국 땅에 살았던 생물들의 흔적을 찾고, 지구의 감춰진 역사를 한 줄 더 써 보고 싶다는 고생물학자의 꿈을 갖게한 모멘텀이 됐다.

대전시 청소년대상에서 연철 학생은 `도전·성취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연철 학생의 도전은 남다르다. 2학년 여름방학 때 특별수업으로 접한 `3D 프린팅`의 세계에 매료된 연철 학생은 3D 모델링대회에서 생체인식모방 도마뱀 디자인으로 대상을 받았다. 지질박물관에 전시된 화석과 공룡모형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뒤 이를 활용한 전시해설을 기획한 것이 좋은 결과를 냈다. 눈으로 만 접하는 박물관의 전시유물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도록 한 훌륭한 체험 교재를 탄생시켰다는 평가까지 얻었다.

연철 학생의 도전은 `책 출간`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현종 과학담당 교사의 격려와 도움이 컸다. 연철이를 눈 여겨 봤던 이 교사는 제자의 포트폴리오를 과학책 전문 출판사인 지성사에 소개했고, 출간 계약까지 이끌어 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지만(공룡은 치킨 맛·가제) 주요 내용은 지질박물관에서 전시 해설을 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와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들의 질문이 대부분이다. 한국 최고의 화석 문화재 보존 전문가인 임종덕 천연기념물센터장이 책의 감수를 맡는다.

연철 학생은 "책에는 왜 공룡을 좋아하게 됐고, 궁금증과 호기심을 풀기 위해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왔는지를 소개한 뒤 본격적으로 공룡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풀어나가려 한다"며 "어릴 때 한번 쯤 공룡을 좋아했던 학생들이 아련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고, 잊었던 공룡에 대한 호기심을 되찾을 수 있는 책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어린 시절 공룡에 대해 느꼈던 애정과 호기심을 전문 지식으로 확장시켜 나가며 고생물학자의 꿈을 착실하게 다져가고 있는 셈이다. 연철 학생이 보여주고 있는 꿈을 향한 도전은 수능과 내신 공부가 고교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유전자, 빅데이터, 공학을 결합한 융합의학의 꿈(정희헌 학생)

전국과학전람회 장려상(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국제 바이오·의과학 실험경연대회 우수상(3위) 및 대상(1위) 연속 수상, 대전광역시 청소년대상 과학부문 수상. 정희헌 학생이 전국의 과학고와 영재고 학생들과 겨루며 고교 3년 동안 이뤄낸 과학분야 수상이력이다.

희헌 학생은 중학교 때만해도 전교 50등에서 100등을 오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당연히 꿈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다만 생물에 관심이 많아 또래 친구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낼 때 곤충이나 동물, 어류 등 동식물 도감에서 봤던 생물들을 직접 채집하고, 집에서 키워보며 번식방법을 연구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학생이었다.

희헌 학생이 과학분야에서 학문적 내공을 쌓게 된 것은 보문고에 입학하고 나서다. `바이오 포커스`라는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생명과학, 특히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재미를 느낀 뒤로는 더 깊이 있는 공부와 제대로 된 실험을 위해 전문가를 찾아 다녔다. 지금은 전공 수준까지 이해할 정도로 자기 만의 진짜 공부에서 스펙을 쌓았다.

바이오·의과학 실험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단국대학교 약학대학 실험실 교수들의 강의를 찾아 듣고, 실험을 진행해 학부생 못지않은 열정을 가진 고교생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내친 김에 바이오 포커스 동아리를 중심으로 지식과 경험을 확장시키면서 한국생물올림피아드에 지원했고, 통신교육과정으로 일반 생물학과 유전학, 분자생물학을 섭렵하면서 인체 생리학의 재미에 빠졌다. 특히 면역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뒤로는 동아리 세미나와 교내 R&E에 참여해 `자가혈 이식에서 사용되지 않던 부분의 항균효과에 대한 탐구`라는 연구주제로 면역학과 혈액학, 미생물학 등 지식의 외연을 키워냈다.

과학 분야에서 조금 성과를 낸 뒤에는 학교 내신 공부에 집중하려 했지만 "대학 진학 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좀 더 깊이 있는 탐구역량을 키우는 대회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라는 이현종 교사의 조언이 마음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때부터 교내 R&E 주제였던 생리활성 물질의 구조적 차이에 대한 연구 주제를 확장시켜 `식물에서의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 추출 최적조건 및 이성질체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과학전람회에 도전했다. 현실은 힘들었다. 당장 일반고인 보문고에는 제대로 된 실험장비가 없었다. 정량화된 연구 측정 결과치를 내기 힘들었다. 전국대회 참가를 위해 실험을 도와줄 전문 기관을 수소문했고, 생명공학연구원이 연구실을 내 줬다. 3개월 동안 스스로 계획서를 작성하고, 다음 9개월은 전문지식을 갖추기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 하루 일과를 보문고와 생명공학연구원 연구실에서 꼬박 보냈고, 1년 여에 노력은 전국대회 장려상의 영예로 돌아왔다.

희헌 학생은 최근 의학과 치의학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기초의학 연구를 기반으로 임상의학, 유전체, 빅데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 연구를 해보는 것이 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의사들은 한 분야만 알아서는 안 되고, 결합해서 더욱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는 `C&D(Connect & Development)`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피력했다.

정희헌 학생은 "중학교 시절 유전자에 관심이 생기면서 직접 임상대상을 자처해 특정 질환의 위험성, 신체적 특징, 약물반응 등에 대한 검사를 받았는데 부정교합이 저의 유전적 질환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기초의학과 임상이 융합되고, 그 위에 생명공학과 공학이 접목되는 연구가 가능한 대학에 진학해 폭 넓은 연구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훈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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