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로는 드물게 지난 15일 행운을 누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첫 출근하던 날이다. 펜 기자 2명이 대표 취재하는 방식이니 유이(維二)한 경우였다. 관저는 우리 기술과 자재로 자연환경과 순응하도록 전통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진 게 두드러졌다. 1990년 10월 완공된 뒤 6명의 대통령과 가족들이 생활했건만 거리감은 어쩔 수 없었다. 대문 격인 인수문(仁壽門) 저쪽은 구중궁궐이었고, 북악산 아래 고립된 섬처럼 버티고 있는 모습이 위압감을 더했다. 인수문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질고 장수한다는 데 역대 대통령들은 어땠을까.

청와대 본관은 더 하다. 천장 높이가 3m가 넘어 특급 호텔 로비를 방불케 한다. 규모가 얼마나 큰지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뒤 "기수야(김기수 수행실장) 사무실에 어떻게 가노"라고 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집무실에 들어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테니스 쳐도 되겠구먼"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비서관들이 머무는 현재의 여민관과 거리가 멀다는 건 잘 알려진 대로 현실적 문제다. 청와대 관저와 본관이 비효율과 권위, 불통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건 아쉬운 일이다.

문 대통령이 여민관에 집무실을 마련한 것은 다행이다. 나아가 대선 공약대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준비하는 것도 지켜볼 일이다.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씻고 문 대통령은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을 분명히 했다. 주영훈 경호실장을 임명하면서 "무엇보다 저의 공약이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잘 뒷받침해 줄 분으로 판단한다"라고 언급한 게 그 방증이다. "신속하게 청와대 이전 작업을 추진해 주고…"라는 말도 했다. 그만큼 의지가 강한 모양이다.

박수받을 일이지만 부작용은 없을까.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는 게 유력한 가운데 당장 주민 불편이 걱정이다. 경호와 보안 역시 엄격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대통령의 안전을 북한의 위협에 노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할 지하벙커 시설 공사가 난관이다. 이전을 강행하려면 50년 된 노후 청사의 리모델링이 필수다. 결정적 변수가 또 있다. 문 대통령이 `개헌을 통한 세종시로의 청와대·국회 이전`을 공약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집무실 약속에 매달리기보다 행정수도의 세종시 건설이 순리로 받아 들여지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도 개헌론과 함께 실질적인 세종시 완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세종시 완성을 위해 국회 분원 설치 등을 우선 검토하자"고 제안했고, "국민이 동의해준다면 행정수도는 세종시로 이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광화문 청와대는 추진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 개헌 공론화 과정에서 행정수도의 세종시 건설을 적극 논의해 개헌안에 담아달라는 의중으로 해석된다.

사실 행정수도의 세종시 명문화는 대선 기간 내내 대선후보 공약의 중심 축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한 야권주자들은 물론 바른정당 남경필 경기지사 등 여권의 후보들도 비슷한 내용을 경쟁하듯 앞세웠다. 요지는 `개헌을 통한 세종시의 행정수도 완성`이다. 행정수도가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산된 이후 파생한 불합리와 비효율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크게는 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정신에 부응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내년 지방선거 때`라는 로드맵대로라면 개헌 논의를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 권력구조 개편이나 기본권, 선거제도 개편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뤄선 안 되겠지만 행정수도만한 어젠다를 찾기 힘들다. `세종시=행정수도`에는 87년 체제를 뛰어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지향적 가치와 함의가 응축돼 있다. 그만큼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비정상으로 13년을 허송한 세종시와 대한민국이 제 자리를 잡을 둘도 없는 호기다. 결자해지, 그야말로 여야가 매듭을 푸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협치`가 필요하다면 이런 경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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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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