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1주일 남았는데 총정리를 못한 수험생에 비유하면 지나친 걸까. 29일 한미정상회담 자리에 앉는 문재인 대통령의 심정 말이다. 보수층을 중심으로 안보 불안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양국 간 현안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회담일은 공교롭게도 67년 전 북한이 6·25 남침 나흘만에 서울을 완전히 점령한 날이다. 대선 때 "당선되면 미국보다 먼저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한 문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 길이 가벼울 리 없다. 갈 곳은 멀고 비는 내리는 데 사방에서 맹수가 달려드는 형국이다.

외교안보 라인이 가까스로 진용을 갖추면서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한 점도 마음에 걸린다. 외교 현안 전반을 다루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전임자가 과거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러난 뒤 엊그제야 후임을 찾았다. 정상회담 실무를 책임질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임명장을 받기까지 퇴진 압박을 방어 하느라 진을 뺄대로 뺐다. 중대사를 앞두고 외교안보 라인의 `자주파` 색채가 뚜렷해지면서 한미관계를 중시해온 `동맹파`와의 마찰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어 걱정스럽다.

회담 테이블에 오를 뇌관은 적게 잡아도 3개다. 먼저 사드를 둘러싼 두 나라 정상 간 인식의 간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보호를 위해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좌우 사이에서 오락가락 해왔다. 이런 사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은 은혜를 모른다`고 비난했다"는 보도(일 아사히 신문 20일자)가 나왔다. 중국은 중국대로 제8차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며 사드 철회의 고삐를 거듭 조였다. 솔로몬의 묘수를 찾을 수 있을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의 여파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특보가 아닌 `학자로서의 소신`에 방점을 두었지만 워싱턴 조야(朝野)의 기류는 완전히 다른 듯하다. `가벼운 입`이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는 냉소가 흐른다고 한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문 특보에게 엄중히 경고하고 파문 축소에 나섰다. `하나의 시나리오`, `계산된 전략` 이라는 야권 일각의 옹호론이 회담이 끝난 뒤에도 이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초대형 돌발변수는 웜비어 사망이다. 평양 관광 중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난 대학생 웜비어는 귀국 하자마자 숨졌다. 미국은 즉시 전략폭격기 `죽음의 백조`를 한반도 상공에 보낼 만큼 끓어 올랐다. 시험이 임박한 상황에서 새 과목이 갑작스레 추가된 인상이다. 문 대통령이 웜비어 사망 몇 시간 만에 조전을 보내 위로의 뜻을 전하며 사태 확산을 경계한 건 잘한 일이다. 트럼프가 대북제재 강화를 주요 의제로 다루려 할 것이란 관측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악재이되 우리가 북한 인권과 제재에 초점을 맞춘다면 반전이 가능한 사건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떨까. 정태익 전 한국외교협회장은 "한미동맹을 재확인하고, 북한을 포함 국제사회에 그 신호를 보내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성규 전 제1 야전군사령관은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교와 안보 전문가의 제안이 약속이나 한 듯 일치한다. 어려울 때 일수록 돌아가는 대신 정도를 가야 한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한미 간 파열음이 현실화한 점을 감안하면 전통적 동맹 관계를 재확인하는 것만으로 성과는 크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 아래서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혈맹으로 표현돼 왔지만 한미동맹은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역대 최악의 만남이라는 박정희-카터 사례가 있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북한은 악의 축`으로 부딪혔다. 문 대통령은 특별한 외부 일정을 최소화한 채 회담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전사 복무 시절 주특기가 폭파병으로 표창을 여러 차례 받은 바 있는 문 대통령이다. 그 능력으로 한미 사이에서 언제 터질 지 모를 뇌관을 제거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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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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