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난센스다. 강남역, 구의역, 백남기, 시멘트 여성살해사건, `호식이` 성추행사건은 우리 인권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인권은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이다. 대통령의 기치는 언어로 작동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각 정부 기관에 인권위의 권고 수용률을 높일 것을 지시했다. `정부 부처는 앞으로 인권위가 권고하면 웬만하면 수용하라`는, 이를테면 행정명령이다. 과거 참여정부시절 인권위가 `이라크 파병 반대` 의견을 냈다. 노무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았다. 대담한 언어구사는 유능한 지도자의 조건이다. 노 전대통령은 `인권위는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라는 한마디로 논란을 정리했다. 과거 여성비하로 논란을 사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은 문재인 정부의 골칫거리다.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선 민주당 여성의원들조차 탁현민 행정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남성 의원들은 잠자코 있다. 탁현민의 `남자가 대놓고 말하는 남자마음 설명서`는 섹스 상품설명서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공유`했던 그 소녀는, 그가 언급한 `룸싸롱 여인들`은, 오빠라고 불러야 힘이나는 남자라고 했다. 탁현민은 문 대통령의 정(正)에 반(反)한다. 그런 문대통령이 방미에 그를 동행시켰다. 탁현민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내세웠던 문 대통령의 진의를 가늠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과연 문대통령은 지난한 합(合)의 과정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비난마저 감수하겠다는 의리 때문인지 흥미롭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인내력은 무기다. 된장녀에서, 탁현민의 기묘한 상상력, 홍준표의 돼지흥분제에도 맞서야 하고 시멘트 살인사건, 강남역에서도 생존해야 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의 인권실태를 함축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여성이다. 여기서 평범함이란 차별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증후군이다.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차별에서 여성은 `견딤`같은 존재다. "(직장을 그만두면)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읽다가 문득 깨달은 게 있다. `여성문제`라는 표현이 셀프비하라는 느낌 말이다. 자학이다. 여성문제연구소라는 이름도 거슬린다.

과거 여성 비하로 호된 비난을 받았던 충남도의회의 장기승 의원의 여성 인권 개선안은 눈길을 끈다. 여학생 책상에 앞가림개를 설치하자는 제안이다. 책상 앞가림개가 없어서 치마를 입고 있는 여학생들은 불안정한 자세로,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면서. 여학생 탈의실, 깔창 생리대 문제 등 여학생 인권문제도 적잖다. 약자들에게 인권은 아직 타 보지 못한 고급승용차와 같다. 민중은 개돼지로, 강남역 구의역 참사는 주변의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 아산에서의 집배원의 잇따른 과로사, 갱티고개 여성살인사건, 잇따른 생활고 자살은 비참하다. 충남의 자살율은 전국 1,2위를 다투고 매년 수 백명이 극단을 택한다.

그래서 인권조례가 만들어졌다. 알바꺾기로 눈물 흘리는 청년들, 여성과 노인, 장애인, 이민자의 사회적약자를 위한 보호장치이자 안전망이다. 그리고 성소수자(`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6`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지수는 100점 만점에 12점으로 유럽 49개국과 비교하면 44위다)도 있다. 충남지역 인권조례가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대 운동으로 폐지 논란을 겪고 있다. 반의 과정이다.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며 폐기를 주장하고 있고 이런 움직임은 도내 시군으로 확산되고 있다. 단초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제공했다. 그는 올 1월 "동성애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문제화하면 안된다"고 말을 꺼냈다가 동성애 반대론자들의 반발을 샀다. 안 지사는 "성소수자들에게도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했다. 지지층 반발과 그동안 했던 말들이 여간 신경 쓰일 것이다. 중앙정치를 모색하고 있는 안지사로선 예사롭지 않은 시험대에 섰다. 안지사는 30일 제주인권회의에 참석해 동성애 등 예민한 의제에 대해서도 토의할 것이다. 할 일과 말은 해야 한다. 필요한건 지도자의 용기와 의무다. 이제 안지사에게 인권문제는 `휴머니스트 안희정`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그건 안희정의 상징성이며, 백신을 맞는 일이기도 하다. 이찬선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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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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