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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트남 징검다리 역할…미래 동반자로 함께 성장해야"

2017-07-02기사 편집 2017-07-02 17: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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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오디세이] 33 박낙종 한·베트남문화교류협회 부회장

첨부사진1지난해 6월 베트남문화우호훈장을 전수받고 있는 박낙종 당시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
"베트남에서 근무할 때 우리나라의 장관 격인 베트남여성연맹 응우옌 티타인 화 주석과 면담한 적이 있어요. 한국인과 결혼하는 여성이 점점 많아지는데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국인들에게 베트남 문화, 특히 우수하고 성실·근면한 여성상을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그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박낙종 한·베트남문화교류협회 부회장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펼치는 이유 중 하나다. 박 부회장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2012년부터 4년간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임했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두 나라 간 가교 역에 더욱 충실하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인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를 펴낸 박 부회장은 "한국과 베트남은 강대국들의 사이에서 생존하며 발전해왔다"며 "두 나라가 베트남전쟁이라는 과거의 아픈 역사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을 통해 진정한 미래의 동반자로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베트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2010년부터 해외문화홍보원에서 해외문화콘텐츠과장으로 근무했다. 마침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을 공모하기에 응모해 선발됐다. 2012년도 8월부터 2016년도 6월까지 약 4년간 재임했다. 한때 적대 국가였지만 외교와 경제, 국방, 문화, 관광 등 모든 교류 분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시기였다. 또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결혼이 크게 늘어나던 때였다. 자연스럽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 베트남과 교류 협력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 지난해 9월 한국 다문화청소년의 건강한 육성을 위해 만든 다문화청소년협회 이사를 맡았다. 11월에는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와 경제교류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사단법인 한·베문화교류협회 부회장으로 위촉받아 분주하게 뛰고 있다. 또 지난 3월부터 베트남의 한국어 교육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교육법인 토픽코리아의 상근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베트남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 한국과 베트남 간 바람직한 관계와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최근 한국 남자와 결혼한 베트남 여성이 4만 명을 넘어섰다. 결혼 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인도 2만 명에 이른다. 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하면서도 착하고 성실하다. 한국과 유사한 농경사회 문화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시부모와 남편을 공경한다. 불행하게도 폭력과 핍박에 시달리고 고부 간의 갈등, 남편과의 충돌로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이혼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모두 베트남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여성은 지역 공동체에서 지위가 높고, 가정에서의 역할이 대단하다.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 최근 저서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가 베스트 셀러가 됐다. 주요 내용을 소개해 달라.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을 끝으로 35년의 공무원 생활을 접게 됐다. 공직 기간 동안 얻은 글쓰기 노하우를 기본으로 베트남 한류의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 근무가 큰 힘이 됐다. 베트남인의 일상부터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 관광 명소, 문화예술 산업, 한류의 현황 등을 조목조목 정리했다. 현지의 독특한 문화를 녹여낸 체험서라고나 할까. 베트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의 문화를 한국에 소개해 양국 간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책이 알려지면서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특강 요청이 쇄도한다는데?

"다행히 독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출간 이후 지금까지 온라인 쇼핑에서 베스트 셀러로 지속 판매되고 있다. 1개월 보름만에 재판 인쇄를 했다. 또 지자체와 대학교, 기관 등에서 강연 요청이 있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다문화청소년육성기금 마련을 위한 북 콘서트와 출판진흥회를 개최해 성금 전액을 기부했다."

-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직에 들어가 성공적인 길을 걸은 것 아닌가?

"그런가? 집안이 퍽 어려웠다. 중학교를 마치고 농사 일을 돕다가 당시 대학생이던 형님의 지도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우역곡절이 많았지만 9급 시험을 통과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선 엘리트 공무원에 대한 염원이 생겨 고시 공부를 했고, 실패한 뒤 7급 공무원으로 합격해 체육부에서 일했다. 뒤에 문화체육관광부로 통합된 후 부이사관으로 퇴임하기까지 참 많은 일을 했다."

- 공직 생활 중 해외유학을 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아쉬움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2000년도부터 2002년까지 국비 유학생으로 필리핀국립대학에서 공공행정학 석사를 마쳤다. 또 경기대 여가관광개발학과에서 '문화관광축제의 정체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부에서 문화관광축제와 한국음식의 관광산업화 업무를 담당하면서 관광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학문적 토대를 쌓고 싶었다."

- 기억나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의 소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우리가 월남전에서 맞서 싸운 현장에서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보니 많은 성과를 거둬 자부심을 갖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협력 관계에 특별한 공로를 세운 것을 인정한 듯하다. 베트남문화우호훈장(2016)을 받는 영예를 얻었으니…. 일을 마치고 공부하러 다니느라 숨 가쁘게 움직이던 주경야독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박 부회장은 "중앙부처에서 평생 공직 생활하면서 처음에는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어릴 적 가난으로 고생했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고향의 모습도 경이적으로 바뀌고 친절하고 열심히 일하는 충청 출신 공직자들을 만나면서 고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자부심도 다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 공직 생활 중 고향과의 연결고리는 어떠했나?

"논산 출신이어서 논산시청과 충남도청 직원들과 교류 관계를 갖고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후원을 받았다. 충청 출신 중앙공무원 모임에도 참여했다. 특히, 논산시에서 개최하는 강경젓갈축제 등에는 여러 해 초청을 받아 자문을 했다. 문화부 종무실에서 전통사찰 지원 업무를 담당할 때 충청도 전통사찰을 새롭게 발굴하고 사찰 보수를 지원했다. 관광산업과에서 근무할 당시 강경젓갈축제 등이 우수 축제로 선정될 수 있도록 간접적인 지원을 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게 되더라."

-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8월부터 외교부 산하 개발도상국 원조기관인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책자문관으로 일한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의 산하기관인 VICAS(베트남문화예술연구소)에 파견돼 베트남의 문화관광정책 자문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일방적 한류 전파에서 벗어나 양국 문화의 균형 있는 상호 교류로 관계가 보다 돈독해지도록 돕고 싶다."

- 충청인들에게 인사말을 한다면?

"저는 아쉽게도 공직의 마지막 4년여 기간 동안 베트남에 나가 있어서 최근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공직자들과의 교류관계가 한동안 끊긴 게 사실이다. 요즘 고향에서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곳이다. 무엇보다 우리 고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충청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대담=송신용 대기자 겸 논설위원





4년간 베트남 근무 성과 정부 문화우호훈장 수상

박낙종 부회장은

중졸 학력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뒤 부이사관으로 퇴임하기까지 31년 동안 입지전적인 길을 걸었다. 논산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열아홉 살 나이에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논산세무서에서 일한 게 시작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렵던 집안이 더욱 어려워져 일자리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군 복무 뒤 고시에 도전했으나 목표로 삼은 3년 기한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1985년도 체육부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다시 들어가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어 문화체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무실과 관광국, 국립중앙박물관, 예술원 사무국 등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업무를 섭렵했다.

공직 생활은 하루 하루가 형설지공 그 자체였다.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 학사, 필리핀 국립대 석사, 경기대 관광학 박사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년여 동안 외교부 소속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며 많은 성과를 냈다.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베트남정부로부터 문화우호훈장을 수상했다. 또 대통령표창과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베트남문화교류협회 부회장과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이사, 토픽코리아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달인 8월 다시 베트남으로 건너가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책자문관으로 일하게 된다.

저서로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가 있다. 학술적인 측면보다는 저자가 직접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베트남을 실용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베스트 셀러다. 베트남과 관련된 사진과 자료가 풍부해 흥미와 깊이를 더해준다. 고향인 논산시 부적면에 매형과 누님이 살고 있고, 논산 상월면에 선산이 있어 정기적으로 찾는다고 한다. 박 부회장은 "서울 생활이 고단할 때면 고향의 흙냄새를 맡고 나서 다시 힘을 얻곤 했다"며 "충청지역에 사는 베트남 출신 여성이 적지 않은 만큼 이들에게도 작으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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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지난해 6월 베트남문화우호훈장을 전수받고 있는 박낙종 당시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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