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혀

사령관 암살 계획을 세우고 황궁 주변을 서성거리던 첸은 헌병대 간부에게 붙잡힌다. 궁정 주방에서 일하기 위해 온 요리사라고 항변하는 첸 앞에 사령관 모리가 나타난다. 총살형으로 죽게 될 거라는 헌병대 간부의 위협과 달리 사령관 모리는 첸이 광둥 제일의 요리사라는 걸 증명하도록 목숨을 건 불가능한 요리 시험을 내리는 데….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칼과 혀`는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붉은 땅 만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첸, 조선인 여인 길순 세 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첸은 체구가 작고 깡마른 중국인으로, 등은 꼽추처럼 목과 붙어 있으며 어깨는 공처럼 둥글고 배에도 살이 늘어져 있는 볼썽 사나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지만, 손에 무수히 불과 싸운 흔적이 남아 있는 천재 요리사이자 비밀 자경단원이다. 그가 독살하려는 자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로,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한중일 각 나라를 대변하는 첸, 모리, 길순은 모두 `칼과 혀`와 밀착된 삶을 산다. 민족 간 싸움의 무기로써 `칼과 혀`로 서로를 해치려고 하지만, 각자 소중한 음식에 관한 추억(첸과 아버지의 개고기찜, 모리와 어머니의 분고규, 길순과 고향 요리 청국장)으로서 또 다른 `칼과 혀`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무하기도 한다. 한중일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세 나라 간의 공존가능성을 타진한 소설이다. 박영문 기자

권정현 지음/ 다산책방/ 348쪽/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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