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상 개인전

untitled, stone. 김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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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상태의 돌을 채취해 형태와 색채, 재질감 등을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 전통적인 감성 소통의 형식을 수석이라고 부른다. 돌은 애초부터 있는 그대로의 형태와 색채·무늬 등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인간은 그 돌로 나름의 주관적인 기호를 만들어내고 자연으로부터 나온 미적 형식으로 간주해 수집과 감상의 대상물로 삼는다. 한자문화권의 전통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이런 수석문화를 현대미술의 맥락으로 끌고 들어온 전시회가 열린다.

대전 서구 둔산동 갤러리C는 `노루벌 작가`로 잘 알려진 김희상 개인전 `오래된 시간을 포집하다`를 12월 5일까지 연다.

김희상은 수석이라는 기호의 영역을 예술적 소통의 장으로 끌어들여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인공적인 아름다움의 경계를 묻는다.

인위적인 흔적을 가미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자의적인 행위이다. 수석문화는 돌에 언어적 해석을 가함으로써 의미작용을 유발하는 인간의 감성의 작동이 가능해진다. 김희상은 이런 돌과 인간의 인지작용에 개입한다. 그는 돌에 금을 그어 인공적인 행위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돌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의미망들을 확대하거나 변형하고 때로는 해체해 전혀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김희상 작가는 "이번 전시회는 돌이 간직해온 오랜 시간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며 "평범한 돌을 작업하면서 자연의 온전한 형상을 탐미하며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돌은 수백 년전 바람의 소리를 알고 있고 오래전 물고기의 몸짓도 알고 있다. 주위를 맴돌다간 동물도, 자라서 스러져간 풀꽃도 알고 있다"며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견디어 낸 시간을 들추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돌작업은 초기작 남근석 작업에 시발점을 둔다. 그는 전통사회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던 남근석을 예술의 장에 투여함으로써 숭배의 대상을 감상의 대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절구방망이 같이 생긴 크고 작은 돌기둥의 끝을 남근 모양으로 다듬어 세워놓은 남근석 작업들로, 그는 전통문화 속에 존재하던 남근석의 기호학적 의미를 동시대 예술의 장에 끌어들여 그 의미를 재해석한다. 남성중심주의사회가 낳은 물신숭배의 문화를 예술적 표현의 모티브로 삼은 것. 이것은 고정된 관습을 재해석하는 비판적인 예술행위의 시작이다.

물론 남근석을 감상하는 이들은 전근대인들의 제의적 숭배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관점으로 그 작품을 해석한다. 그것은 남근이라는 인체부위를 돌로써 재현한 남근석의 상징성을 전시장이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감상의 대상으로 전치함으로써 숭배의 대상물로서의 의미를 해체하는 예술적 행위이다.

전통문화 속의 남근석과 마찬가지로 전통 수석문화 또한 오랜 시간동안 반복돼온 의미해석의 코드가 있다. 이른바 수석의 전형성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김희상은 돌에 금긋기라는 심플한 조형행위로 그 전형성을 깨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돌에 특정한 형상을 새겨 사건을 기술하거나 풍경을 담아내는 식의 재현적인 예술 표현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금긋기는 반복적인 패턴문양일 뿐이다. 그는 반복되는 선의 연쇄에서 의미를 생성한다. 그것은 작업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의 희열이기도 하고 작업의 결과가 발산하는 새로운 서사의 발언이기도 하다.

돌의 형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의 흐름을 잡아내는 것이 김희상 작업의 출발이자 핵심이다. 그는 돌의 일부분에 인공의 흔적을 가하고 또 일부는 남겨놓음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두 영역을 대비한다. 돌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겨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매우 개념적인 예술적 소통행위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는 "김희상은 채집한 자연물에서 의미를 캐내는 오브제 미학을 재해석한다"며 "고정된 가치와 의미를 재생산하는 관습적인 전통의 차원을 비판적 차원에서 재검토하며, 보다 풍부한 의미를 생산하기 위함이다. 김희상의 핵심은 돌의 자연미를 예술적 차원에서 맥락화하는 예술적 개념 그 자체다"고 말했다.

김희상 작가는 대전고교와 충남대 예술대학 조소학과, 한남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이사, 전국조각가협회 이사 등으로 재직하고 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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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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