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노비제도는 부모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가 되는 세습제였다. 부모 중 한명은 양민이고, 다른 한명이 천민이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과 딸은 모두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 제도를 채택했다. 그 아들과 딸은 어머니집 주인의 노비가 돼 노비 신분이 세습됐던 것이다.

고종의 갑오경장을 계기로 반상(班常)과 서얼(庶孼)의 차별 등이 철폐됐지만 학벌과 문벌 등에 따른 차별은 1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게 모르게 남아있다.

최근 충북 청주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을 왕에서 노비까지 5단계로 캐릭터를 만들어 학생들의 사진을 부착하는 학급 운영 방식은 조선시대 노비제도를 연상케 해 씁쓸함을 안겼다.

담임교사는 역사 시간에 배울 과거 신분제를 보여주자는 뜻에서 기획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고 체계가 잡히지 않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과연 신분제도를 어떻게 이해했을지 우려스럽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 한국사회가 신분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해 기를 쓰고 출세에 목을 맨다. 고위 관료나 학자, 재벌이 되면 자신 역시 상류층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생각해서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힘들게 쌓아올린 신분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리를 저지르고도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변호사를 고용하고, 설령 감옥에 간다해도 수백만원의 일당으로 황제 노역을 하면서 감액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가 과거 교육부의 한 관료의 말대로 `1%가 좌우하는 신분제 사회`라면, 그 사회는 철저히 무너져야 한다.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조선후기 민중은 그들 방식으로 소리를 냈다. 양반지주들에게 바치던 소작료의 납부를 줄이거나 경제력을 갖춘 일부 농민들은 양반을 사며 저항했다. 오늘날 그 저항의 방식이 조선후기와 같을 수는 없지만 오늘날 사회에 맞게 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해 말 `다스는 누구겁니까?`라는 열풍으로 시작된 다스 주인 찾아주기 캠페인이 있었기에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고, 1994년에 도입된 주민소환제도 덕에 8차례에 걸친 주민투표가 실행됐다. 특정세력이 행복한 사회가 아닌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은 1%의 자각이 아닌 99%의 민중의 저항이다. 원세연 지방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