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흐르는 그곳] 25 대전 구즉묵마을

구즉묵마을이 2007년 봉산동 재개발 이후 북대전IC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은 관평동으로 자리한 구즉묵마을 전경. 사진=정재훈 기자
구즉묵마을이 2007년 봉산동 재개발 이후 북대전IC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은 관평동으로 자리한 구즉묵마을 전경. 사진=정재훈 기자
메밀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민족 고유의 음식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구황작물로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묵은 민초의 상징이자 한민족의 얼이 깃든 음식이다. 설화에는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문학가 박목월의 시 `적막한 식욕`에는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에 올라 새 사돈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나와있다. 대전에는 한국전쟁 직후인 1960년, 유성구 구즉동 일대에서 묵 파는 집이 생겨나 묵 골목을 이루기 시작했다.

◇구즉묵마을, 대전을 대표하기까지=구즉묵마을의 시작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고한 강태분 할머니가 봉산동 구즉(九則)에서 시작한 도토리묵 장사는 마을을 이뤘고, 1980년대 초반 10여곳에 불과하던 묵집은 1990년대 30곳으로 늘며 성황을 이뤘다. 구즉묵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친 것은 1993년 대전엑스포를 기점으로 한다. 당시 대전에는 지역을 대표할 음식은 없었고, 그나마 이름난 식당이라고는 설렁탕, 삼계탕, 냉면 정도였다. 대전시는 지역 대표음식을 선정하는 데 있어 고심에 빠졌고, 도토리묵이 흔한 음식이지만, 지역 재료를 쓰는 데다 서민음식이라는 특징에 구즉묵을 향토음식으로 지정했다. 묵마을이 엑스포대회장에서 가깝다는 점도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강태분 할머니가 운영하는 `할머니집`에서 선보인 묵밥이 엑스포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강 할머니의 묵밥은 간장으로만 맛을 낸 국물에 묵을 채 썰어 담고, 김치와 김, 깨를 고명으로 얹은 요리다. 이후 구즉묵은 대통령도 찾는 음식이 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을 응원하러 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전에 방문했을 당시 수행원을 비롯한 330인분의 묵밥을 주문했고, 구즉묵마을 모든 가게들이 비상이 걸릴 정도로 요리를 준비했었다. 성황을 이루던 묵마을은 2006년 한차례 위기를 겪었다. 봉산동 일대가 재개발되며, 터주대감이던 묵집들도 모두 떠나야 했다. 문을 닫은 곳도 많았다. 강 할머니집은 500m 떨어진 지금의 자리에 새로 문을 열었고, 다른 묵집은 2㎞ 떨어진 호남고속도로 북대전IC 부근에 모여 새로운 묵마을을 꾸렸다. 당시 묵마을 식당 주인들은 "아리랑 노랫가사처럼 발병이 날까봐 10리(4㎞)도 못 갔다"라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2006년 재개발 직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묵마을을 방문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강 할머니집에 가려했으나 개발 반대 시위 때문에 북대전IC에 먼저 자리 잡은 `산밑 할머니 묵집`에서 묵으로 저녁을 먹었다.

◇속이 풀리는 국물 맛의 매력=구즉묵마을이 재개발됐지만 아직 동네에는 참나무가 많이 남아있다. 과거에는 구즉마을 참나무 도토리를 사용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 전국에서 재료를 구해온다. 과거에 집집마다 가마솥에서 희뿌연 연기를 뿜으며 묵을 쑤던 풍경도 사라졌다. 다만 새로 옮긴 묵마을은 2012년 `여울묵영농조합`을 꾸려 공동으로 묵을 만들어 맛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는 기계에서 도토리를 까고, 말린 후 가루를 내어 4-5일가량 물에 담궈 묵의 떫은맛을 없애고 앙금을 건져 원통 솥에 끓여 묵을 만든다. 다만 원조 할머니집은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구즉묵마을은 같은 묵을 쓰지만 국물과 김치, 고명, 묵을 찍어먹는 양념장은 모두 다르다. 어느곳은 멸치를, 또 어느곳은 다시마를 우린 육수를 낸다. 묵은 김치를 고명으로 얹어내는 곳도 있어 묵집마다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값은 5000-7000원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묵과 어울리는 보리비빔밥도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 제격이다. 구즉묵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자 한 대기업은 대전 구즉묵을 재해석한 메뉴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기업은 전국의 향토음식을 소재로 음식을 출시하고 있으며, 대전 구즉묵 외에도 강릉 닭칼국수, 초당 순두부, 여수 갓김치 등을 선보였다. 이른바 구즉묵이 대전의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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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즉묵으로 만든 묵무침.
사진=유성구 제공
구즉묵으로 만든 묵무침. 사진=유성구 제공
구즉묵마을 원조격인 할머니묵집. 손으로 투박하게 쓴 간판이 정겹다.
사진=유성구 제공
구즉묵마을 원조격인 할머니묵집. 손으로 투박하게 쓴 간판이 정겹다. 사진=유성구 제공
대전 유성구 봉산동 일대 묵집과 주택가 전경. 재개발을 벌이기 전 부락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진=유성구 제공
대전 유성구 봉산동 일대 묵집과 주택가 전경. 재개발을 벌이기 전 부락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진=유성구 제공
할머니묵집 전경. 50년 전통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지금은 봉산동 재개발로 위치를 옮겼다.
사진=유성구 제공
할머니묵집 전경. 50년 전통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지금은 봉산동 재개발로 위치를 옮겼다. 사진=유성구 제공
봉산동 구즉묵마을 전경. 재개발 전의 모습으로 슬레이트 지붕이 눈에 띈다.
사진=유성구 제공
봉산동 구즉묵마을 전경. 재개발 전의 모습으로 슬레이트 지붕이 눈에 띈다. 사진=유성구 제공
과거 대전 유성구 봉산동 일대에 위치했던 묵 전문식당.
사진=유성구 제공
과거 대전 유성구 봉산동 일대에 위치했던 묵 전문식당. 사진=유성구 제공
대전 봉산동 구즉마을에 위치하던 묵집들. 지금은 재개발돼 북대전IC 인근으로 자리를 욺겼다. 외할머니묵집이라는 상호가 눈에 띈다.
사진=유성구 제공
대전 봉산동 구즉마을에 위치하던 묵집들. 지금은 재개발돼 북대전IC 인근으로 자리를 욺겼다. 외할머니묵집이라는 상호가 눈에 띈다. 사진=유성구 제공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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