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기 교수의 건축이야기

진화하는 인류의 다양한 사회적 변화는 그 이전 세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건축 기능을 요구한다. 종교적 가치가 세상의 질서를 지배했던 시기의 종교건축물들을 포함하여 지배계급의 정치행위를 위한 왕궁이나 일반 시민들의 경제적 활동을 포용하는 시장 등은 인간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본적 기능을 담아내 왔던 건축의 전형들이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계급사회의 붕괴 등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유형을 탄생시키는데, 인간을 대신하는 기계로 가득한 거대한 공장이나 민주주의 정치구조에서 시민 의견을 대신하는 의사당, 엘리베이터의 발명과 더불어 등장한 고층건물 그리고 자동차의 대중적 보급과 함께하는 주유소 등은 그 이전 시대와 구분되는 당대의 새로운 건축물임이 분명하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교육시설 특히 최고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대학의 건축적 형식 역시 그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어 왔다. 인류의 제한된 지식과 정보의 저장소로서 위상을 지켜왔던 중세시대까지의 대학이 비교적 폐쇄적인 구조를 띄었다면 계몽주의 및 인본주의의 발전과 함께한 시대 이후 대학은 세상을 향해 열린 교육 기관으로서 차츰 그 진정한 역할을 요구 받게 되었다. 세분화된 학문의 개별적 특성에 따라 독립적으로 분리된 대학 건물들은 해당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최적화된 구조로 구성되었고 그러한 건물들이 종합적으로 배치된 대학 캠퍼스는 도시 속으로 들어와서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제 전문성을 우선시하는 기능주의적 대량생산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이 화두로 떠오르는 새 시대가 열리고 창의성과 협동성 등이 강조되는 요즘 대학의 교육철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융합`으로 대표되는 이 새로운 변화는 대학의 학문적, 물리적 경계가 과거와 달리 더욱 유연하게 열려야 함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대전대학교는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진 교육목표와 핵심역량 등을 실현하는 교육체계의 진보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HRC (Hyewha Residential College) 건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2018년도 신입생부터 수용이 가능하도록 건립된 HRC는 1200여명을 수용하는 기숙형 대학으로서 Heart Hall 과 Harmony Hall 의 2개동으로 구성되어 대전대학교의 남동 측 캠퍼스에 자리하게 된다. HRC는 문자 그대로 단순히 거주공간의 역할을 하는 기숙사의 기능을 넘어 학습활동과 공동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 공간을 함께 포함한다. 이러한 융합형 교육 시스템의 도입은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주제, 방식,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는 유기적인 학습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특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로재의 승효상 건축가와 메스스터디스의 조민석 건축가가 각각의 Hall을 맡아 설계를 담당함으로써 더욱 그러한 융합적 공간 구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한다.

우선 Heart Hall 설계를 담당한 이로재의 접근은 자연 속에 자리잡은 신비스런 수도원을 연상하게 한다. 대학캠퍼스의 동측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기숙사는 마치 외부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성벽처럼 인지되며 그러한 수평적 움직임의 마지막 모서리에서는 마치 배움의 의지를 표방하는 듯 종탑처럼 수직으로 솟아올라 인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랜 기간 대전대학교의 주요한 건축물을 디자인한 설계사무소의 작업답게 내측에 면한 기숙사의 배치계획은 캠퍼스내의 인접한 학교건물들과의 조화로운 연계를 목적으로 면밀하게 이루어진다. HRC의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강당과 세미나실 및 체육시설 등은 경사진 대지 위에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위치하여 아기자기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넓게 펼쳐진 옥외데크와 브릿지를 통해 다양한 시설과 공간들 사이사이로 시원하게 펼쳐진 산책로를 체험하도록 고안되었다.

메스스터디스의 Harmony Hall 설계의 기본 관점은 mate로 명명된 사회적 단위를 바탕으로 하여 공공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유지되어야 할 개인적 일상의 가치를 정교한 수량작업으로 치환하는 이성적 노력에서 출발한다. 동일한 모듈로 분절된 건물의 매스와 그 사이의 포켓공간은 바로 그러한 개념의 산물이며, 분절된 단위공간이 요구되는 기능과 대지조건에 맞추어 마치 생명체의 세포처럼 증식되며 전체 건축물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기숙사와 달리 소규모의 공동시설들이 개인공간에 매우 인접하고 친근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식당과 세미나실, 스터디라운지 등으로 구성된 공동생활시설은 student hub로 명명되어 건물의 중간층에서 상부와 하부의 기숙사와 기존의 학교 캠퍼스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외부로부터 보호되며 대지 중앙부의 정원과 유기적인 교육시설을 마주하는 Heart Hall의 기숙사 발코니가 내향적인 구성체를 대변한다면 그와 반대로 대지의 경사를 따라 인근의 수려한 풍광을 감상하도록 열려있는 Harmony Hall의 연속된 포켓 테라스는 외향적인 유기체에 가깝다. `융합`적 사고의 출발점이 고정된 어느 한쪽이 아닌 상호 교류가 가능한 다층적 관계를 유연하게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볼 때, 개인과 공동체, 생활과 학습, 내면과 외면을 상반되게 관계 지어가는 Heart & Harmony의 건축공간이 학생들에게 그러한 유연한 사고가 더욱 활발해 지는 체험의 장소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며, 나아가 사회가 요구하고 대전대학교가 추구하는 올바른 인재로서 성장해 나가는 밑바탕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한다.

대전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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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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