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 사건, M과 연애 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 사건, 구미 만유 사건, 이혼 사건, 이혼 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신생활에 들면서에서(218쪽)

나혜석이 밝힌 바와 같이 그녀는 당대 시대를 앞서간 여성 지식인이었으나 희대의 스캔들에 휩싸여 35세에 이혼한 후 고된 말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많은 글을 남겼으며,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문필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했다. 당시 많은 이들을 자극한 사건은 외도와 이혼 사건이었다. 남편 김우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나혜석이 최린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화근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우영은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결국 1930년 나혜석과 김우영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나혜석의 기구하고도 억울한 이혼 과정은 그가 생전에 일부 번역하기도 한 희곡 `인형의 집`과 거울의 상처럼 닮아 있다. 헨리크 입센의 로라도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빌린 돈이 화근이 되어 모든 비난을 뒤집어쓰고 이혼당했다.

그녀의 생애를 몰락 혹은 파국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나혜석은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데` 패배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고통도 그녀에게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가장 무서워하는 불행이 언제든지 내습할지라도 염려없이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아무러한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 고통 중에서 일신일변할지언정 결코 패배를 당할 이치는 만무하다"는 나혜석의 말은 옳다. 이제 그녀의 글을 다시 읽어 보려 한다.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여성이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널리 전해지길 바란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됐다. 1부에는 소설을, 나머지 부에는 논설, 수필, 인터뷰, 대담을 가려 뽑았다. 각 부의 말미에는 나혜석과 함께 이광수, 김기진, 김억 이렇게 네 명의 문인이 1930년대 당시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풍조를 비평하는 `만혼 타개 좌담회`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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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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