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충남도지사는 `맞지 않는 옷`이 될 수 있겠다. 보수 재건이라는 명분이라고 한들 작은 옷을 조여 입고선 중앙정치 무대로 보폭을 넓히기 힘들다. 유권자 시선이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출마로 옮아간 이유다. 충남의 정치 1번지 천안에선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들을 중심으로 천안 갑 추대론이 분출됐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 등 당 지도부는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양새다. 자충수라는 비판에도 길환영 전 KBS 사장을 영입하며 전략공천 가능성을 내비친다.
이 전 총리의 의중은 뭘까. 3년 여의 칩거를 끝낸 그가 처음으로 찾은 곳이 한 때 지역구였던 홍성이다. 11대 조부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충신 의헌공 이광윤묘`를 참배하며 정치 재개의 신호탄을 쐈다. "단순히 할아버님을 뵈러 온 것"이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누가 됐든) `충청대망론`은 꺾이지 않았다"데 방점이 찍혔다는 게 설득력 있다. 안희정 전 지사 사태로 분노하고 참담해 하는 충청인들에게 대망론을 거론한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정치 복귀 걸음이 한국당 홍문표 사무총장의 지역구로 향한 점도 무언의 압력으로 여겨졌다.
본인의 의지나 당 지도부의 견제와는 무관하게 이 전 총리의 지방선거 효용성은 대단히 크다. 안희정 쓰나미로 충청의 진보가 위축 됐다곤 하나 보수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6차례의 대전 충남 광역단체장 선거를 야권이 독식했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만만한 반면 한국당은 무기력증에 휩싸여 있다. 강력한 구원투수로 선거 구도를 흔들지 않고선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건만 한국당은 달팽이 뿔 위에서 영토 싸움 격이다.
지방선거는 지방권력만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10여 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지면서 향후 정국은 일대 분수령을 맞는다. 원내 1당 여부가 그 결과에 따라 뒤바뀔 수 있다. 보수 재건, 충청대망론과 더불어 개인적으론 명예회복이 시급한 이 전 총리로선 명분과 실익을 조화시킬 기회다. 당내 지도부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건 걸림돌이다. 개인적 일정이라지만 미국행은 이런 분위기와 연관이 깊어 보인다.
일각에선 무소속 출마 당위성을 역설한다. 덩치와 몸값을 키워 당에 복귀해 포스트지방선거 정국에서 더 큰 역할을 하라는 주문이자 기대감이다. 다만, 2009년 세종시 수정 추진에 반발해 지사직을 던진 뒤 당적을 유지한 걸로 보아 그 답지 않은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야인 시절 "진보 쪽에 (충남의) 권력이 넘어간 건 지사직을 사퇴한 내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한 대목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장의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보수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결자해지에 나설 수도 있는 걸로 해석이 가능해진다.
공교롭게도 2006년 이 전 총리가 충남지사 출마를 결심한 곳이 미국이었다. 여론조사상 10% 정도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전격 경선에 나서 초반 불리를 딛고 당선되기에 이른다. 12년 뒤 2개의 선택지 앞에 섰다. 정치 시간표를 6월, 아니면 2년 뒤 21대 총선에 맞추느냐다. 조부의 묘소를 찾은 직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건 여러 복선의 일환이다. 호시우행의 미국 구상을 어떤 퍼즐로 변용하느냐가 지방선거 정국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