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느닷없이 대학 본고사가 사라졌다. 과외는 금지됐다. 대입시에 내신 성적 반영이 의무화되고, 듣도 보도 못한 졸업정원제가 처음 생겼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이른바 7·30 교육개혁 조치다.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하고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70년대 고교평준화 이상의 충격이었다. 입시를 불과 3개월 앞둔 고3 교실과 학원가는 손을 놓았다. 대학 문호가 넓어졌다곤 하나 폐해와 부작용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실험실의 청개구리가 된 수험생들은 대학 졸업 때까지 시달렸다.

최대 4개의 대학에 지원 가능하되 면접을 1곳으로 제한하자 희한한 일이 속출했다. 세칭 명문대 인기학과는 눈치작전으로 대규모 미달 사태를 빚었다. 한편에선 예비고사에서 184점(340점 만점)을 얻은 수험생이 서울대 법대에 배짱 지원해 합격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대학 강의실은 콩나물 시루로 변했고, 졸업정원제는 두고두고 화근이 됐다. 수험생의 고통과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신악(新惡)을 키웠다. 14차례 변화를 겪은 대학입시 중 최대의 흑역사다.

의욕이 넘치는 것도 그렇지만 직무 유기는 더 문제다. 현재 중3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안 논란이 그 것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로 공을 넘겼다. 국가교육회의는 다시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하겠다니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공사판의 하도급 모양새가 됐다. 교육부 시안(試案)은 최소 108가지 정책 조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고리원전처럼 공론화로 해법을 찾기 힘든 사안이다. 무지하거나 순진하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교육부의 폭탄 돌리기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김 부총리는 자신의 업무를 떠넘긴 채 숨어버렸다. 대입시는 수학능력고사와 학교생활기록부 같은 여러 사안이 얽히고설켜 있어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참여가 중요하다. 이해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해 조율이나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국정 철학과 정책 기조를 이해하고 있는 교육부 수장이 책임 있게 다뤄야만 할 사안이라는 의미다. 국가백년대계 중 가장 큰 관심사인 대입 개편과 관련, 이런 무소신과 무책임을 보여준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박춘란 차관은 오버해서 화를 불렀다. 직권남용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10여 개 주요 사립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시모집 비율이 낮아져 학생·학부모들의 불만이 많다"며 2020학년도 입시에 정원을 늘릴 수 있는지 문의한 게 발단이다. 말이 좋아 문의지 팔 비틀기다. 해당 대학 입학처장들이 즉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정시 인원 확대를 논의한 게 그 방증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입시 요강 제출기한을 늦추고 전형안 손질에 들어갔다.

대입제도 개편안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애꿎은 담당 국장을 날려버린 건 이번 사태의 하이라이트다. 국가교육회의에 시안을 넘긴 지 이틀 만에 대학학술정책관을 지역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원포인트 인사 조치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문책성 좌천이다. 올해 초 유치원 영어 금지 논란 때 담당국장을 대기발령했던 것과 판박이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실무자가 아니라 사회부총리가 직접 나서 매를 맞는 게 공직자의 처신이다.

입시 제도에 관한한 자주 뜯어고칠수록 탈이 난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었다고 개편에 나서면 제도의 안정성은 무너지고 만다. 더구나 뜨거운 감자인 대입 현안을 자신들은 쏙 빠진 채 공론화위에 맡긴 교육부는 소신이 없고, 무책임하다. 국민 앞에 백팔번뇌를 던져 놓은 장·차관은 두말해서 무엇하랴.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 못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가 책임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교육 현장은 불안해진다. 불안은 불신을 낳고, 분노를 키워 종국엔 정권을 향한다는 걸 모르진 않을 거다. 국민들이 행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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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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