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의 시네마수프] 서프러제트

지난주 혜화동에 만여 명의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몰카 사건의 수사와 검거에 있어 피해자가 남성인 까닭에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하고 신속한 수사와 혐의자를 구속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몰카 범죄에 대한 경찰, 검찰의 대응이 불충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혐의자의 성별에 따른 수사와 법 집행에 차별이 있었다는 주장에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숫자의 여성 인파로 인해 역대 최대 규모의 여성 집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곳곳에 이런 문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성들이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요?"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을 위한 투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반복됩니다. "도대체 왜 여자들이 투표권을 가지려고 하는가?"

영화의 주인공 모드는 어린나이부터 세탁공장에서 일을 하며 근근히 삶을 꾸려왔습니다. 세탁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남편과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모드의 가정은 어렵지만 화목합니다. 모드는 세탁공장의 동료로 인해 우연히 여성참정권 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아내의 행동을 단속하지 못하는 것은 남편의 사회적 수치로 여겨지던 시절로, 모드는 남편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고 아이도 볼 수 없게 됩니다. 투표권이 없는 여성에게 자녀에 대한 친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참정권을 위한 평화 집회는 경찰의 집요한 진압과 언론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점점 더 극단적인 폭력 시위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모드의 동료 에밀리 와일딩이 경마장에서 국왕의 말 앞에 몸을 던져 목숨을 잃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여성참정권 투쟁은 더욱 확대됩니다. 남자와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을 바꿔보려던 모드의 의도는 곧 현재와는 다른 삶을 향한 열망이 됩니다. 그리고 그 열망은 분노가 아닙니다.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경찰은 "몰카 범죄 범인 검거율은 96% 수준"이고 사법 적용에 성차별을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동일범죄동일처벌을 원칙의 변함은 없으나 "여성들이 체감하는 불공정이 시정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합니다. 96퍼센트 검거라는 숫자는 근사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숫자는 지난 5년간 검거 된 1만 9623건의 몰카 범죄에 대한 통계라고 합니다. 그 중 피의자의 성비는 남성이 97.5%이라고 합니다. 올해 들어 붙잡힌 몰카 피의자는 이달 13일 기준 1288명이라고 하니 이미 누적 건수는 2만 건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결국 검거된 사건들의 피해자도 2만 명 이상이라는 것이겠지요. 대부분 여성이고 말입니다. 검거된 사건의 피해자만 모여도 2만 명이 훌쩍 넘을 텐데 혜회동 시위에 만 명 넘게 모인 여성들의 숫자는 그리 놀랍지도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이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불안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몰카 탐지기라는 것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고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아려진 일입니다. 최근 들어 몰래카메라를 찾거나 의심이 들 때 틈새를 찔러 카메라 렌즈를 부수는 `몰카 찌르개`라는 물건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도 이 글을 쓰며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 유포 된 경우에는 피해자가 사설업체에 의뢰하여 지우는 방법 밖에 없고 그 비용이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이른다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한 일간지의 인터뷰 기사에서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을 삭제하는 전문 업체의 대표가 지워달라고 요청이 와서 작업을 마치고 다시 의뢰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면 `피해자는 자살했다`는 답변을 듣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읽은 것이 기억 납니다.

다시 한 번 물어봅니다. "여성들이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요?"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혹은 딸을 가진 부모로 살면서 여자라서 특정 범죄에 남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높은 확률의 불안과 걱정을 갖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가 무엇인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여자들이 스스로 조심하지 않거나 잘못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문화의 문제이던, 교육의 문제이던, 편견의 문제이던, 인터넷 매체와 규제의 문제이던, 사법 시스템의 문제이던지 간에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강력한 대책과 변화가 시급한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분노일 것입니다. 반복적인 공포가 일상의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이것과는 다른 현실은 불가능한 것인가 생각하고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현진 극동대 미디어 영상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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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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