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참패 겪고도 극심한 내홍만 거듭

"아직도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기보다 국민이 정치를 더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난달 말 퇴임직전 마지막 공식행사장에서 한 말이다. 사실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어줘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민의 걱정거리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급기야, 이제 우리 국민들은 보수의 활로까지 걱정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6·13 지방선거에서 역대급 참패를 당한 보수정당들은 난파선 그 자체다. 게다가 난파선 선원들은 어떻게든 배를 고치고, 새롭게 방향을 잡아나가기 위해 힘을 모으기보다 조금이라도 덜 부서진 안전한 곳에 숨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모양새다. 심지어 삼삼오오 모여 조타실 운전대를 잡아보려 이전투구하는 모습까지 연출한다.

보수의 맏형이라 자부하던 한국당에선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다음날부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장관까지 역임한 정종섭 의원을 포함한 일부 초선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중진 책임론을 제기했다. 스스로 반성한다고도 했지만, 방점은 중진의 정계은퇴와 당 전면에 나서지 말라는 데 찍혀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 이어 김성태 대표권한대행이 수습방안으로 `중앙당 해체`를 선언했는데, 독단적 결단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이후 또다시 해묵은 친박·비박 논란으로까지 확산됐다. 급기야 22일 5시간 여 동안 진행된 의총에선 김 대행의 쇄신안은 논의조차 못한 채 김 대행의 사퇴와 김무성 의원의 탈당 공방 속에 계파갈등만 노골화했다. 환부를 도려내고, 거듭나기 위한 진통이 아니라 아직 정신 못차린 추태의 연속일 뿐이다.

바른미래당도 마찬가지다. 비대위 회의와 의총을 거쳐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공존하는 새로운 정당`을 표방하며 탈이념 민생정당으로 거듭날 것임을 선언했지만, 정체성을 둘러싼 내홍은 여전하며, 한국당을 대체할 정치결사체로 기대하긴 현재로선 녹녹치 않다.

보수를 표방한 정당들이 수구기득권과 낡은 패러다임에 머물면서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지만, 보수 자체의 순기능 조차 부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16대 링컨 대통령은 보수주의에 대해 "새롭고 아직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낡고 여러 번 해본 그 무엇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과거의 훌륭한 전통을 존중하고, 특정 현안에 대해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풀어가자는 것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가 내걸었던 기치중 일부는 이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빨갱이`로 대표되는 반공주의, 미국에 대한 극단적인 우호, 산업화를 이끌었던 경제성장 우선주의, 국가중심주의 등이 그것이다. 한국당 김용태 의원이 최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신념 체계는 시대적 흐름과 국민적 바람에 부합하는가. 우리를 되돌아보고, 우리의 정체성과 신념 체계를 재정립 해야 한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균형과 견제를 위해서라도 보수정당이 바로서야 한다. 대표적 진보학자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진보논객인 유시민 작가역시 최근 리 교수의 글을 인용하며 "오른 쪽 날개가 건강해야 한다. 병들어 있으면 날지 못한다"며 보수정당 재건 필요성을 언급했다.

물론 보수의 재건은 쉽지 않은 과제다. 보수정당을 혁신할 리더십을 찾을 수 없고, 이를 뒷받침할 역량 있는 인재 풀도 부족하다. 한국보수의 가치를 재정립 하는 것 또한 꼭 해야 할 일이나, 단시일 내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보수가 부패한 적폐청산의 대상이고, 능력마저 없다고 낙인찍힌 현재로선 그 무엇하나 쉬운 게 없다.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물론 그 전제는 처절한 자기반성과 그에 따른 혹독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