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수의 전통놀이 돋보기

어린이들이 운동장에 금을 그어놓고 비석치기 놀이를 하는 모습. 사진=연기향토박물관 제공
어린이들이 운동장에 금을 그어놓고 비석치기 놀이를 하는 모습. 사진=연기향토박물관 제공
초등학생들이 재미있게 노는 놀이 열가지 중 하나가 비석(碑石)치기이다.

양쪽에 줄을 긋고 한쪽에 비석을 세워 놓는다. 처음에는 돌을 던져 쓰러뜨리고 두 번째는 깨금발로 가서 쓰러뜨리고 세 번째는 발등, 다음은 무릎, 사타구니, 배, 어깨 마지막은 머리 위에 얹어놓고 걸어가서 세워놓은 돌을 맞춰 쓰러뜨려 노는 놀이이다.

가만히 보면 비석이 쓰러져 깨질 때까지 온갖 방법으로 비석을 향해 돌을 던지는 놀이이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놀이 일까. 기록으로 전하는 우리의 놀이중 돌을 던져 노는 놀이는 몇 가지 있다.

원시사회에서는 스스로 주변의 위험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돌팔매질을 했다. 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새나 동물을 잡을 때, 나무열매를 딸 때 돌맹이를 던졌고, 전쟁시 무기로 돌을 던지기도 했다.

고구려에서는 대동강에서 왕이 보는 앞에서 투석전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것이 발전해 단오일에 하는 세시풍속으로 변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석전회`라는 세시풍속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놀이가 아이들이 노는 비석치기와는 다른 놀이이다.

그러면 이 놀이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비석치기가 만들어진 놀이는 조선말기 즉, 일제가 침략을 노골적으로 본격화할 때부터 이다. 그전에 우리에게는 비사飛砂치기란 놀이가 있었다. 이것은 사기그릇 조각이나 단지조각을 날려서 노는 놀이로 사기를 날려서 논다해 비사치기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가 이것을 비석(碑石)으로 바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옛날 우리 마을 입구에는 비석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비선거리`라고 불렀는데 비석에는 충신, 효자, 열녀 등 훌륭하신 역사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 내용을 써서 세워 놓았다.

비석에 글을 새기는 것은 영원히 기린다는 뜻이 전한다.

즉, 돌은 썩거나 변하지 않아 그 내용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동구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 아버지는 아이를 비석 앞에 세워 놓고 너의 조상이 나라를 위해 또는 부모에게 효를 다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산 교육을 이곳에서 한 것이다. 일제는 이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마을마다 세워놓은 그 많은 비석을 모두 없앨 수는 없으니 비석치기라는 놀이를 만들어 스스로 비석을 깨 없애주길 바랐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비석치기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문방구에서 비석을 사서 이것이 깨질 때 까지 온갖 방법으로 던지며 놀고 있다. 연기향토박물관장 임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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