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의 공격적인 자산축소와 트럼프정부의 재정적자로 신흥국은 달러화 자금조달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예상보다 빠른 연준의 금리인상속도에 따른 달러화 랠리로 외채가 많고 경상수지 등이 취약한 경제여건을 가진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본유출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글로벌경제의 자본흐름에 글로벌 금융사이클(GFC)이라는 공동요인이 내재돼 있으며, GFC가 미국의 통화정책기조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한편 자본흐름이 신흥국경제에 붐-버스트를 동반하는 것은 스스로 안전자산을 생산하지 못하는 대신 위험자산을 공급하는 신흥국의 속성에서 비롯한다. 더욱이 자국통화로 외채를 발행하지 못할 때 환율변동에 따른 평가효과는 신흥국경제와 GFC의 동행성을 한층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말 그대로 그 가치가 안정적인 안전자산은 원활한 경제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달러화는 글로벌경제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국제상품 가격에 인용되고, 제 3국간 무역거래도 대부분 달러화로 결제되며 외환거래의 85%를 점한다. 미국경제 규모에 비해 달러화의 위상이 압도적인 것은 자금시장의 높은 유동성, 다양한 만기구조와 발달된 파생시장 때문이다. 반면 신흥국이 발행하는 증권은 수익률은 높으나 그 가치가 불안정한 위험자산의 성격을 가진다. 선진국에 비해 성장률은 높지만 산업이 고루 발전하지 못했고 특히 외환과 금융부문이 취약해 통화 및 만기불일치 위험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글로벌경제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삭풍에 바람막이 없는 삶을 사는 것과도 같다. 스스로 안전자산을 생산할 수 없는 신흥국의 숙명인 것이다. 안전자산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은 금융회사의 자금조달비용을 높여 국제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가 4000억 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낙후된 금융의 근인(根因)이 어디에 있는 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증거다. 우리가 중심부로 진입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포기해서는 안 될 도전이다.

이은섭 KEB 하나은행 둔산골드클럽 PB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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