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많이 노는 아이가 성공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이 하교할 때, 노란 미니밴이 교문 앞에 줄지어서 학생들을 기다리는 풍경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보이는 모습이다. 잘 아는 것처럼 아이들을 학원으로 데려가려는 차들이다. 많은 아이들이 그 차를 타고 학교에서 학원으로 직행한다. 그 곳 공부가 끝나고서야 아이들은 다시 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들은 면밀한 계획으로 아이들을 `돌린다`.

아이들을 돌려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교육일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17년 초·중·고 사교육비 통계에 보면, 초·중·고 학생 70.5%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1년에 18조 6000억 원이라는 돈이 사교육비로 지출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연구들은 사교육이 공부 잘하는 학생을 만드는데 그렇게 유용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학원 공부를 해야 공부가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유행하는 신념이다. 더 많은 나라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학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대부분 선행학습은 금지되는 행동이다. 형식적으로는 우리나라도 그렇다.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는 예습조차도 금지한다. 아이들의 사고력 발달에 지장을 주고, 심지어 다른 학생의 학습까지도 방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조사와 토론, 비판과 협력을 통해 차근차근 학습해야 건강하게 자란다고 학부모를 설득한다. 이런 나라에도 학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게 있는 학원은 학습 부진 학생들이 보충학습을 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런 나라일수록 어린이들의 놀이 인프라는 잘 갖추어져 있다. 10여 년 전에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 들렀던 시골마을 어린이 놀이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집이 40-50 채 보이는 마을 한복판에 세워진 놀이터였다. 통나무로 만든 그네와 시소, 판자로 만든 장벽, 사다리처럼 엉성하게 만들어진 늑목, 나일론 줄과 가죽 받침으로 만든 그네…. 마을 어른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놀이기구들이었지만, 기구마다 사용방법과 주의사항을 적은 판자가 달려있고, 입구에는 놀이터 사용 규칙과 그것을 어겼을 때의 벌칙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놀이터 중간에는 따가운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현대식 차양막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선진국은 아이들을 많이 놀게 한다. 그러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시설을 지원하고, 놀이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마을에 파견하기도 한다. 괜히 그런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다. 놀이를 충분히 경험한 아동들이 더 유능하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놀이 경험이 많은 아동들이 심리적, 인지적, 사회적, 신체적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많은 연구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특히 1966년 미국의 텍사스 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범죄를 연구한 스튜어트 브라운의 연구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범죄자들은 어렸을 때 놀이가 심각하게 결핍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실 그것은 놀이라는 특성을 이해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아이들이 놀이라는 세계에서 많은 일을 경험해 보기 때문이다. 어른들처럼 결혼도 해 볼 수 있고, 모래로 밥도 지어 볼 수 있으며, 또래들과 탐험이나 전쟁을 경험해 볼 수도 있고, 기지를 발휘해 위험을 물리칠 수도 있다, 친구들과 토론하고 탐험도 해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자아를 발달시키고, 사회적으로 성숙해지는 경험을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 중에 누가 더 충실하게 수행하겠는가? 긴 안목으로 본다면 우리 아이들을 더 많이 놀게 해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윤국진(대전교육과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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