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원로예술인을 만나다 ① 박기종 국악인

무형문화재 서도소리예능보유자 박기종 선생이 대전 서구 월평동에 있는 자택에서
무형문화재 서도소리예능보유자 박기종 선생이 대전 서구 월평동에 있는 자택에서 "서도소리를 전 국민에게 알리고 홍보하는데 매진하고 싶다"며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대전문화재단은 지역에서 문학과 시각, 공연과 대중예술, 문화일반분야 등에서 30년 이상 활동한 70세 이상의 원로예술인 5명을 구술자로 선정해 `예술인 구술채록사업`을 진행 중이다. 2014년부터 진행중인 구술채록사업은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예술인들의 삶과 활동상, 업적을 예술인의 육성으로 채록해 책자와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과 변천과정을 오롯이 파악하는 것은 물론 후세에 전할 수 있어 지역문화의 정체성확립과 문화예술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해는 △김배히(1939년, 시각) △이종국(1949년, 연극) △손기섭(1928년, 문학) △박기종(1926년, 국악) △조광자(1945년, 무용) 등 5명의 지역원로예술인이 구술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9일 대전시 서구 월평동의 박기종 선생 자택에서 구술채록사업 관계자들과 함께 박 선생의 국악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무형문화재 서도소리(황해도2호) 예능보유자이며 무형문화재 41호 예능이수자 박기종 국악인은 서울 문리사범대학과 명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교원으로 36년간 재직했으며 1992년 충남 논산여자중학교에서 정년을 마쳤다. 이후 목원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서 17년, 청주의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10년 동안 강사로 활동하며 청년 국악인 양성에 힘썼다.

1926년 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박기종 국악인은 당시 고산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여성 국악인 산홍 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해주의 민혁식, 산홍선생, 평양의 이정근, 서원준 등 서도의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받았다. 서도소리는 `떠는 소리가 없으면 서도소리가 아니다`고 말할 정도로 특유의 `요성`이 특징이다. 또한 노랫말도 평안도와 황해도의 사투리가 사용돼 지역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광복 이후 서울로 내려온 그는 1950년 6·25 전쟁의 혼란이 잦아들 무렵 `이반도화` 선생의 신조 긴아리와 `최경명` 선생에게 `배따라기` 등의 소리를 배우게 됐다. 이후 남도소리에도 관심이 생긴 그는 초임 중등교사 발령을 전라도로 신청해 남원에 가서 전라도의 `육자백이`를 배우며 우리 소리를 향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남원산성, 농부가, 까투리타령 등을 배우는 과정에서 경·서도소리와 남도소리는 목청의 쓰임이 달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목청이 다 상하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이후 박 선생은 전라도를 떠나 대전으로 자리를 잡고 목청을 회복시켰다.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목이 회복될 무렵 평양에 있을 때부터 들어왔던 주요무형문화재 41호 이양교 선생을 찾아가 국립국악원에 드나들며 정가를 배우고 익히는데 몰두했다. 그가 정가를 배우게 된 이유는 서도소리꾼들은 민요와 정가를 구분하지 않고 부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박 국악인은 평양의 본바닥 서도소리를 좀 더 넓게 펼쳐나가는 일에 앞장서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남한에선 잊혀지고 있는 서도소리들을 한 곡 한 곡 복습해 개인발표회를 열고, 가사집과 율명 음계로 만든 가락선보를 교재로 가르치면서 소리꾼으로 활동했다. 아흔이 넘은 지금도 40도를 웃도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목을 보호하기 위해 자택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을 정도로 여전히 소리꾼의 몸가짐을 지키고 있다. 또 지역의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서도소리를 가르치며, 지역에서 서도소리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박 선생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한반도, 특히 남한에는 서도소리를 제대로 배우고 지켜나가는 국악인들이 흔치 않다"며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온 서도소리를 지역에서도 함께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대전시민을 비롯한 전 국민들에게 알리고 홍보하는 등의 노력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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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서도소리예능보유자 박기종 선생이 대전 서구 월평동에 있는 자택에서
무형문화재 서도소리예능보유자 박기종 선생이 대전 서구 월평동에 있는 자택에서 "서도소리를 전 국민에게 알리고 홍보하는데 매진하고 싶다"며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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