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공작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과 소련을 양대 축으로 한 동서 냉전은 1989년 베를린 장벽붕괴를 시작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이어지는 90년대 초반에 종언을 고했다. 그리고 서구의 냉전시대는 걸작 스파이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구상에서 유일한 냉전 국가임에도 본격 첩보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남으로 내려온 북의 공작원, 일명 남파 간첩이 소재가 된 적은 있었으나, 북으로 잠입한 남측의 스파이를 본격적으로 그린 영화 또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 `공작`은 실제 남과 북 사이 벌어졌던 첩보전의 실체를 처음으로 그리는 한국 영화다. 영화의 타임라인은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남북 관계가 북핵 이슈로 전쟁 직전의 긴장감으로 치달아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였던 때부터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시기까지를 아우른다. 대북 스파이 `흑금성`의 첩보전을 통해 남과 북 사이에 있었던 긴장감과 더불어 같은 민족이기에 오갈 수밖에 없었던 미묘한 교감들을 영화는 폭넓게 그려내고 있다.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 1993년,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박석영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과 대통령 외에는 가족조차도 그의 실체를 모르는 가운데 흑금성은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 고위간부 리명운에게 접근한다. 그는 수 년에 걸친 공작 끝에, 리명운과 두터운 신의를 쌓고 북한 권력층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1997년, 남한의 대선 직전에 흑금성은 남과 북의 수뇌부 사이 은밀한 거래를 감지한다. 조국을 위해 굳은 신념으로 모든 것을 걸고 공작을 수행했던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이 영화는 모든 한국인에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로 남아있는 북한에 홀로 잠입했던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후, 한국 현대사의 기본 틀을 규정한 분단시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남과 북 사이에 적국으로서 실재했던 긴장감과 같은 민족으로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을 실감나게 그려내며 분단 현실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첩보원은 액션 히어로가 아니라 `심리전의 대가`이자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들이다. 영화에서는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에서도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북측의 집요한 의심과 이를 피해가기 위한 흑금성의 페이크가 쉼 없이 교차한다. 단순한 액션이 아닌 주인공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심리전을 통해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당긴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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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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