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라인이나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포비아`다. 포비아(Phobia)는 우리말로 `공포증`을 뜻하는데, 주로 명사 뒤에 붙어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가습기살균제 사고에서부터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파동 등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자 `케모포비아`(Chemical+Phobia)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는 라돈침대 사건으로 `라돈포비아`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BMW 차량 화재사고가 연일 터지면서 `BMW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숨 쉬는 것, 먹는 것, 입는 것에서부터 이제는 자는 것, 타는 것까지 소비자가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소비자가 시장에 나온 제품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세상, 이는 소비자가 기업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정부에 대해 불신을 갖는 사회다. 최근의 BMW 사태만 봐도 그렇다. BMW가 2년 넘게 버티다 사고원인을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결함이라고 밝혔지만, 리콜대상이 아닌 차량에서도 화재가 발생하면서 소비자의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소극적이고 한 걸음씩 늦은 정부의 대응도 소비자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업도 정부도 믿을 수 없는 그야말로 소비자만 답답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최근 포비아를 불러온 사건들의 원인은 사전규제의 부재나 부실에 기인한 바가 컸다. 상황이 분명하고 동일·유사한 문제가 재발할 때는 규제가 사회적으로 더 값싼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예측 곤란하거나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대규모 소비자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는 것이 바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들 제도에 대한 열기도 함께 식고 만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신기술로 무장한 상상하기 힘든 융합제품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소비자문제 역시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다. 이런 시대에 과연 기존의 규제방식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정부가 새롭고 복잡한 소비자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충분히 됐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불안과 공포로 소비를 주저하게 되는 사회는 시장경제의 근본을 위협한다. 포비아 세상 속 소비자를 구해낼 제도적 선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지광석 한국소비자원 법제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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