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수당고택 문간채 월방(출처 : 문화재청)
예산 수당고택 문간채 월방(출처 : 문화재청)
한옥은 풍수지리의 영향에 따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 거주자의 의도가 반영된 배치와 건물의 구성, 시원한 대청마루와 따뜻한 온돌 등 여러 가지 건축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구성 공간이나 부재 등에 담긴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들 또한 한옥이 품고 있는 특징이다.

최근 흥행몰이를 한 영화 `신과 함께`는 집안 곳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온 가택신(家宅神)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졌고, 우리네 부모세대 또한 집안의 평안을 보살펴 주는 여러 신에게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조상들은 한옥 내 대청에 집안의 가장을 보호하는 성주신(城主神), 안방에 안주인을 돕고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三神), 부엌에 안주인을 보호하는 조왕신(竈王神), 조왕신과 원수지간이라 부엌에서 멀리 짓는다는 화장실의 측신(厠神) 등 집안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집을 수호하는 가택신들 이외에도 한옥은 머무는 공간마다 또는 구성되는 부재마다 여러 가지 의미들이 담겨있다. 옛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시했던 상량식은 집을 지은 날짜, 축원문 등을 적은 상량문(上梁文)을 집의 틀이 완성되는 시점에 가장 높은 들보(마룻대)에 올려 집의 평안을 기원하는 행사를 말한다. 이 들보에 거쳐하는 신을 성주라고 불렀고, 들보와 관련하여 `대들보가 부러지면 집안이 망한다.`, `대들보가 울면 가장이 죽는다.`와 같은 미신도 전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문지방에 앉지 마라.`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다.` 등 문지방과 관련된 말을 들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문을 구성하는 한 부재중 문지방(門地枋)은 방의 출입문이나 대문에서 문틀의 아랫부분에 설치된 가로재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 모습이 마치 달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월방(月枋), 아랫부분에 자리한 부재(인방재)이기 때문에 하방(下枋) 등으로도 불린다. 다만, 월방은 곡선으로 휘어진 인방재를 칭하는 단어로 문지방뿐만 아니라 다른 위치의 부재에도 사용되는 용어이다.

옛 선현들은 문지방에 대해 공간을 구분해주는 역할과 동시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도 보았다. 문지방은 신이 오가는 길이라고 생각해 밟거나 앉는 것을 꺼렸다고 전해지며, 공간을 관장하는 신들이 문지방에 앉아 지키고 있으므로 함부로 밟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 충남 예산 제일의 명문가로 알려진 수당고택(修堂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81호)의 대문은 월방이 상·하부에 모두 구성되어 있다. 문지방의 중앙부를 낮게 만들어 넘기 편하게 만들고 문 상부에 구성된 월방의 중앙부를 조금 더 높게 만들어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충북 보은의 우당고택(愚堂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134호)에도 사랑채로 이어지는 대문과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 하부에 문지방을 월방으로 구성하였다.

창호에는 `亞(아)`자문, `卍(만)`자문 등을 창호의 살로 표현해 `장수, 길운, 길상만덕(吉祥萬德)`의 의미를 담았고 박쥐문양을 하여 `복(福)`을 담아내기도 한다. 의미를 잘못 짚어 헛소리하는 상황을 두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한다.`라고 표현하는 말에서 봉창은 토벽(土壁)에 구멍을 뚫고 창호지를 바른 창문을 의미한다. 잠결에 문인지 창인지 구분하지 못해 봉창을 두들겼다는 소리에서 유래된 속담이다.

한편 `머름 위에 걸터앉으면 안 된다.`라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머름은 창호 하부에 짜인 틀로, 문지방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머름은 일반적으로 하부에만 설치되는데, 한옥에서 창과 문을 구분해주는 역할과 찬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막고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시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충남 아산의 맹씨행단(孟氏杏壇, 사적 제109호)에는 대청 전면에 머름이 설치되어 있고, 머름이 창호 하·상부에 모두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상부 머름은 고려시대 건립된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등 일부 사찰건물에서도 확인되어 고려 시대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충남 홍성에 있는 사운고택(士雲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198호) 사랑채의 머름도 정면 툇마루 중간에 설치되어 있어 그 위치가 독특한데 공간 구분뿐만 아니라 미적인 목적도 포함했던 것으로 보인다. 홍은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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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맹씨행단 대청머름(출처:문화재청)
아산 맹씨행단 대청머름(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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