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은 우리나라 가장 큰 명절의 하나다. 석(夕)은 달을 뜻하는 `월(月)`과 같은 글자에서 유래됐다. 달이 떠오르는 시간, 즉 저녁을 말한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그 기록이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7월 보름부터 한가위 날까지 두레 삼 삼기를 다퉜다고 나온다. 봄 여름 동안 씨를 뿌리고 가꿔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날이니 농경의 시작과 관계가 깊다. 서양에도 추수감사절이 있지만 달의 이지러짐과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점이 우리네 추석과 다르다.

곡식을 키워내는 건 해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굳이 보름달이 뜨는 날을 기념하는 건 어울림과 소통 때문이었으리라. 열 나흗날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들고 햅쌀로 백주(白酒)를 빚어 마셨다. 봄에 깬 병아리를 기르면 추석 때 잡아먹기 알맞게 크는데 이를 황계(黃鷄)라 하고 백주와 함께 반가운 손님에게 대접했다.

마당에서 밤 늦게까지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손님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에는 보름날이 제격이다.

100년 전만 해도 밤이 되면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인공 조명이 넉넉지 않던 시기에 달은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었다. 백제가요 정읍사에는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먼 길을 나선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달빛에 의지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노래다.

가까이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달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보름달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달빛을 묘사하는 표현 중에 `휘영청`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이 말이 유래됐다고 하는 `輝映`이란 한자어를 들여다 보면 빛을 내되 밝힌다기보다 비춘다는 의미다. 천하를 밝히는 해의 소중함은 누구나 잘 알지만 어려울 때 은은히 도와주는 이들은 잊기 쉽다. 이런 음덕을 기리는 것 또한 추석의 또다른 의미가 아닐까.

이용민 취재1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