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의 상아탑 꼭대기에 있지 않았다.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었다."

책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이하 유치원에서 배웠다) 속 한구절이다. 저자는 로버트 풀검. 그는 1937년 미국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태어났다. 세일즈맨, 카우보이, 화가, 조각가, 음악가, 바텐더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20여 년간 교회에서 목사로 봉직하며 에세이를 썼다. 글이 인기를 끌며 `유치원에서 배웠다`까지 나왔다.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8년 미국에서 첫 출간 이래 34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97주간 등재됐다고 한다. 전 세계 103개국에서 31개 언어로 번역돼 출판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올랐다. 책의 인기에 힘 입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술집에서 배웠다" 등 패러디 버전도 등장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성인이 실수라도 저지르면 주변에선 애꿎게 유치원을 탓 했다. 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해 그렇다고.

그때는 그나마 유치원에 긍정의 의미가 담겼다. 요즘은 유치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4-2018년 유치원 감사 보고서를 공개하며 단초가 됐다. 소문만 무성했던 사립유치원의 비리 행태는 충격이었다. 일부 사립유치원은 정부지원금으로 명품백을 구입하고 성인용품까지 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이 격앙되자 국무총리가 직접 종합대책 마련과 시행을 지시했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설립·운영되는 학교이다. 유아는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취학전까지 어린이를 말한다. 6세 미만 취학 전 아동을 돌보는 어린이집이 보육기관으로 규정된 반면 유치원은 어엿한 `학교`이다. 유치원이 생애 첫 학교라 불리는 이유이다. 첫 학교가 온갖 비리와 불·탈법으로 얼룩져 있다면, 훗날 아이들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회고할 수 있을까?

썩은 살은 도려내고 악행을 방조하는 제도와 시스템은 고쳐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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