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는다.`

그렇다. 복수는 유지태(영화 올드보이)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은하(드라마 청춘의 덫)는 이미 했고, 장서희(드라마 아내의 유혹)는 얼굴에 점을 찍고 역대급 복수를 했다. 이 모두 현실이 아닌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누군가가 생기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심은하가 했던 것처럼 "부셔버릴꺼야. 똑같이 되돌려 주겠다"고 다짐한다. 기나긴 준비 끝에 복수에 성공을 했다면 그 희열과 쾌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 맛이 꽤나 달착지근 할테니.

그런데 여기, 그 맛이 얼마나 달착지근했냐고, 그래서 행복하냐고 묻는 연극이 있다.

대전예술의전당이 19-20일 단 2회만 무대에 올린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얘기다. 권력에 눈이 먼 장군 `도안고`는 문신 `조순`을 모함해 그의 구족(九族) 300명을 멸살한다. 평소 조순의 은혜를 입었던 시골의원 `정영`은 마흔다섯에 어렵에 얻은 늦둥이를 내주고, 조씨 집안의 혈육인 `조씨고아`를 데려다 기른다.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정영은 자신의 아들은 물론, 아내까지 잃고만다. 정영은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20년동안 가슴속에 품었던 복수의 씨앗을 꺼내 결국 처단한다. 악을 악으로 갚은 것이다.

하지만 20년을 기다려 복수에 성공한 연기자도, 이를 지켜보던 관객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복수의 클라이막스가 지나가고, 정영이 죽어간 혼령들과 마주할 때 그 이유는 어렴풋이 드러난다. 정영은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정작 "복수해줘서 고맙노라고" 칭찬해 주는 이는 단 한사람도 없다. 정당성 있는 복수였지만 그 누구도 알아주지도, 기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결국 진정한 복수는 "악을 악으로 되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그냥 사는것"이라는 이 단순한 명제를 이 작품에서는 아주 특별하게 만든다.

이는 인물과 주제를 과장하고 해학을 곁들인 고선웅 연출의 힘이다. 무대는 온몸으로 연기하는 배우들로 절절함이 끓어오르는데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온다. 신속한 장면전환과 적절한 타이밍에 배치한 유머 코드로 관객들이 딴 생각을 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거창한 무대 없이도 간단한 소품이, 쉴새없이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빈 무대를 가득 채운다. 특히 정영의 비극적 삶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 것은 순전히 배우 하성광의 독보적인 연기 덕분이다. 150분 동안 관객을 쥐락펴락 하며 복수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케 한 연극 `조씨고아`는 가슴속에 복수의 씨앗을 품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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