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연구원이다. 필자의 하루는 단순하다. 6시 30분 기상. <무시기> 보내기. 오전 9시 출근, 저녁 9시 반까지 연구. 퇴근해서 10시부터 <무시기> 작성. 자정을 넘긴 12시 반쯤 취침. 그리고 일어나서 <무시기> 보내기. 회식을 해도 9시 반이면 양해를 구하고 귀가하고 있다. 다들 필자가 아침에 하는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과음하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무시기>는 <무작정 시작한 그림 이야기>의 약자이다. 약 500명의 독자가 SNS 단톡방이나 메시지로 <무시기>를 받는다. 한 주에 1명의 화가를 선택하고 그림을 매일 5점 선정해 그림과 화가의 배경부터 관련 이야기를 풀어쓴다. 지금까지 50명의 화가를 선정했다.

고흐/고갱/베르나르/밀레/박수근/

클림트/피카소/칸딘스키/클레/라파엘로/

미켈란젤로/다빈치/장욱진/마티스/샤갈/

루소/천경자/마네/모네/모딜리아니/

폴록/샤라쿠/이중섭/프리다 칼로/

세잔/카바라조/르느와르/신윤복/몬드리안/

빈센트 반 고흐/루벤스/렘브란트/김환기/살바도르 달리/

노먼 록웰/앵그르/드가/이응노/뭉크/

로트렉/쇠라/베르메르/프로이트/베이컨/

백남준/뒤러/얀반 에이크/그랜마 모지스/마그리트/김홍도

작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50명의 화가를 분석해서 보냈고, 1년이 지나고 부터는 복습을 하고 있다. 작년보다는 올해 5월부터 시작된 복습에서 화가들과 더 친근해지고 있다. 작년에는 잘 모르고 작성했고, 올해는 음미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우연이다. 2015년 정부 기관인 과학기술부에 1년 동안 파견을 나갔다. 저녁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술을 마시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취미가 그림이다. 숙소 가까운 곳에 취미반이 있어 시작해 지금은 유화를 그리고 있다. 그림의 묘미는 무념무상에 있다. 대덕연구단지의 <벽돌한장>이라는 지식나눔 봉사단체 단톡방에 그림이야기를 올리면서 시작한 것이 일 년 반이 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바쁘다. 직장에서는 실적을 챙겨야 하고, 때가 되면 승진을 신경써야 하고, 동료들과의 마찰도 해결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리면 어린대로, 크면 큰대로 돈과 신경이 쓰인다. 부모님들이 나이 들어가시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고, 시시 때때로 식구들이 크고 작은 병이 나고 치료하고 하는 일들도 삶에서 반복된다. 언제 한번 TV CF에서 등장한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마음 놓고 한가한 해변에서 햇볕과 그늘을 벗삼아 느긋하게 맥주한잔 할 수 있겠지?" 하고 그저 훗날을 기대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그 훗날은 언제가 될까?

고3인 작은 아이덕분에 대전의 제일 번화가인 둔산동에서 거리를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4-5년에 비해 요즘 달라진 것은 더 이상 아웃도어 상점이 많지도, 아웃도어 옷을 입고 활보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산에 가면서 에베레스트 산에 가도 좋을 등산복을 입고 간다"고 할 만큼 아웃도어가 대세였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필요 이상의 명품을 몸에 걸치지 않는다. 대신 독서 토론회나 본인들이 즐길만한 취미 생활에 더 시간을 할애하는 듯하다. 명품 쇼핑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정신을 윤택하게 해 주는 명품 삶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시기를 받아 보는 대부분의 분들은, "하루의 시작을 멋진 명화감상으로 시작하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라고 말씀 하신다. 필자는 무시기를 읽으시는 분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늘 소망한다. 아는 척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아는 만큼 인생이 재미있고 명품이 되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누워 있는 것도 좋지만 매일 멋진 명화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일도 꽤 좋은 명품 생활이다. 무시기 독자들의 최고 인기 화가는 미국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이다. 75세에 붓을 잡기 시작해 1600점을 남겼다. 우리 모두 화가가 되기에 충분하다. 오늘 시작하시면 된다. 명품 삶 말이다.

임현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의과학산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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