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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필리버스터

2018-11-09기사 편집 2018-11-09 0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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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청이나 정부청사, 세종정부청사같은 공공기관에 갈 일이 많아 집회를 자주 본다. 어느날 차량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머릿 속에 필리버스터가 떠올랐다.

필리버스터는 의회에서 법안이나 정책 통과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무제한 의사 발언을 진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민주주의의 맹점인 다수의 횡포를 저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필리버스터가 유명하다. 당시 야당 김준연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공화당 정권이 한일기본조약 협상 과정에서 1억3000만달러를 들여와 정치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정부는 구속을 시도했고 여당은 김준연 의원 구속 동의안을 상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5시간 19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한일 협정의 잘못된 점과 김준연 의원 구속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결국 구속동의안 처리는 무산됐다. 이후 공화당은 의사진행발언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사라졌던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법 개정으로 부활해 2016년 민주당이 테러방지법을 무산시키는 데 쓰였다. 무제한 토론은 재적의원의 60%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종결시킬 수 있어 한번 시작되면 사실상 막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조건이 다소 까다로운 편이다. 미국은 발언이 의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도 상관없다. 성경을 낭독한다거나 전화번호부를 읽어도 된다.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간을 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오직 무제한 토론 방식으로만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 자리를 비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은 금지된다. 하나의 주제로 긴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되는 셈이다.

최근 집회들 중에는 녹음된 목소리를 확성기로 반복해 들려주는 방식이 눈에 띈다. 심지어 장송곡이나 노래를 틀어놓기도 한다. 민주사회에서 자칫 묻히기 쉬운 소수의 목소리를 항변하는 건 지극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선전 방식인가 의문스럽다. 소수의 목소리가 힘을 가지려면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촛불집회로 대통령을 바꾼 시민들이다. 눈높이를 맞추려면 전략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유명가수의 콘서트를 직접 보러 가는 이유는 라이브 공연이 주는 감동이 더욱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용민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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