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둘러싼 논란과 진실] (상) 가격 급등? 오해와 진실

연도별 쌀 가격 동향
연도별 쌀 가격 동향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의 조사에 따르면 수험생 부모의 84.3%는 직접 쌀밥 등으로 구성된 도시락을 쌀 것이라 답했고 나머지 부모들도 죽, 도시락을 사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분식류를 구매하겠다는 부모는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쌀은 우리 민족에게 주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밥상 한 켠을 차지했던 먹을거리로 밥을 존대하는 표현 `진지`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러나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우리 민족과 수천년을 함께해온 쌀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61.8㎏로 20년 전에 비해 40.6㎏(39.6%)이나 줄었다. 최근에는 `가격 급등`, `목표가격` 등 논란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논란의 진실과 주요 이슈를 살펴보고 앞으로 한국 농업의 방향을 전망해본다.

◇쌀 가격 급등의 오해와 진실

정부가 지난 2일 물가안정을 위해 비축비(구곡) 5만톤을 방출한다고 발표했다. 쌀값이 지나치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상품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대개 수요가 늘어나거나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로 올 들어 쌀값이 크게 오른 이유는 수요 때문이 아니다. 시중 공급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는 연간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37만톤의 쌀을 매입했다. 쌀값이 수년째 하락세를 보이며 12만원대까지 떨어지자 일정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해 가격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평균 쌀값은 13만669원 정도로 1996년 가격 13만 2898원보다도 낮았다. 정부는 쌀값 급락이 시작된 2014년 24만톤에 이어 2015년 35만 7000톤, 2016년 29만 9000톤 등 매년 쌀을 사들였다. 정부가 시장에 강력한 가격 부양 신호를 주자 쌀값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최근 상승세는 정부 예상을 다소 웃돌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산지 쌀값은 80㎏ 가마당 19만 3188원을 기록했다. 2년 전인 2016년 12만 9000원보다 약 6만 4000원이나 비싼 가격이다. 단순히 최저치와 비교해보면 정말로 `폭등`이란 표현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 시각에서는 오히려 적정가격을 회복했다고 보는 게 맞다.

2013년 18만 3000원과 비교하면 올해 쌀값은 1만원 가량 오른 셈이다. 연간 1% 정도 오름세로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값이 내렸다고 볼 수도 있다. 농업계에서 상승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산지 쌀값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폭락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고 지난해부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해 올해 예년 수준을 넘어섰다. 30년 전인 1986년도 쌀값이 12만원이었다는 점에서 올해 쌀값이 폭등했다기 보다는 2016년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다는 얘기다.

쌀값이 실제 소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폭등`이란 표현은 괴담에 가깝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61.8㎏으로 채 한 가마(80㎏)이 되지 않는다. 1년 365일로 나눠보면 하루 소비량은 0.17㎏이며 값은 529원이다. 가장 낮았던 2016년과 비교해도 하루 쌀 소비 비용 인상폭이 200원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쌀값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가중치는 5.2에 불과하다. 일반 가정에서 소비 지출에 1000원을 쓸 때 쌀을 사는데 드는 돈은 5.2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쌀의 단위가격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심리적 착시현상을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1년 소비량을 훨씬 넘는 80㎏을 가격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실제보다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다. 1인당 2개월 소비량에 가까운 10㎏ 정도로 가격을 발표하면 다른 농산물처럼 몇천원 내외의 등락폭이다.

왜곡된 시각은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와 맞물려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해 가격이 폭등했다는 가짜뉴스까지 만들어냈다. "국내 쌀값이 폭등한 이유는 북한 쌀 퍼주기 때문", "정부가 북한산 석탄과 쌀을 맞바꿨다", "북한에 쌀을 주느라 정부 양곡창고가 비었다" 등의 가짜뉴스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확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비밀리에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1995년 15만t 규모로 대북 쌀 지원을 시작했다. 이후 2000년과 2002-2007년 연간 10만-50만톤 가량을 북한에 보냈다. 2010년 비교적 적은 양인 5000톤의 쌀을 지원한 것을 마지막으로 북한에 쌀을 보낸 적이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1만톤 정도만 북한에 보내려 해도 수백 명의 인력이 2개월 가량 작업해야 하는 물량"이라며 "몰래 북한에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쌀을 보낸 일도 없다. 우리나라는 한중일 및 아세안 10개국이 설립한 쌀 비축기구인 애프터의 회원국이다. 애프터 회원국들은 자연 재해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인도적 차원에서 쌀을 상호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실제 올 여름 홍수피해를 겪은 미얀마에 쌀 1300톤을 긴급 지원했다. 올해 지원된 총 6만톤 가량의 쌀 원조 대상국 중 북한은 포함돼 있지 않다.

`나라 곡간이 비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는 다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정부의 쌀 재고는 올해 8월 말 기준 160만 톤에 이른다. 올해 예상 전국 쌀 생산량은 387만 5000톤으로 신곡 수요량은 378만톤보다 다소 많다. 곡간이 비기는 커녕 사실상 남아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이다.

이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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