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어려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 있다.

무과나 잡과와 같은 특수 직렬은 논외로 하고 문과만을 살펴보면 과거는 크게 소과와 대과로 나뉜다. 소과는 경전의 이해도를 묻는 생원과와 논술 능력을 따지는 진사과로 나뉘었고 합격하면 대과 응시할 수 있었다. 국립대학인 성균관 입학 자격도 주어졌다.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대과(문과)는 소과 출신이나 성균관 유생, 현직 관료가 응시했다. 오늘날로 따지면 소과는 수능, 대과는 사시나 행시 정도로 볼 수 있다.

소과는 생원과 진사를 합쳐 200명을 뽑았다. 과거시험 응시자가 평균 10만명 내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균관에 가는 경쟁률만 500대1이었던 셈이다. 60만명 중 약 3000명이 가는 서울대 경쟁률보다 높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붓대나 콧구멍 속에 커닝페이퍼를 숨기거나 대리 시험을 치는 등 부정 행위도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시험에선 속도가 큰 관건이었다. 각 지방 대도시에서 치러지는 향시는 부정이 일어날 소지를 줄이기 위해 당일 채점해 점수를 공지했다. 심사위원들은 시간에 맞추기 위해 보통 선착순 300장 정도 채점하고 나머지는 대충 넘겨버렸다고 한다. 길이 10m 내외 답안지 앞뒤를 빽빽하게 채워야 하니 얼마나 빨리 글씨를 쓰는 지도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였다.

최근 치러진 수능을 두고 문제가 너무 어려워 학교 교육만으로는 풀 수 없다던가 지문이 길고 문항수가 많아 시간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논란이 된 국어영역의 문제를 맞추려면 크게 두 가지 능력이 요구된다. 과학적 배경지식이 있다면 수월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을 것이다. `A는 B이고 B는 C이다` 식으로 전개된 복잡한 문장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능력도 해법이다. 전체 지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C는 A다` 대신 `A는 D다`가 잘못된 보기라는 걸 골라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 능력 모두 풍부한 독서로 기를 수 있다. 독서는 독해속도도 높여준다.

융합적 소양과 논리적 사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덕목으로 사회 트렌드에 어긋나지 않는다. 수능 난이도를 비판하기보다는 독서 비중이 낮은 교육시스템과 독서 접근성을 높이지 못한 사회시스템을 지적하는 게 먼저다.

시험은 능력에 따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불수능은 모두가 어렵다는 점에서 만점자가 속출하는 물수능보다 낫지 않은가.

이용민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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