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복에 대해 말이 많다. 궁 입장료 무료로 촉발된 젊은이들의 한복 입기가 이제 외국관광객까지 확산되었다. 경복궁 주변을 걷다 보면 한복 입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한복대여점도 여러 곳 성업 중이다. 입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입은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저런 한복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디자인도 있다. 급기야 기준을 정해 여기에서 벗어난 한복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온다. 한복을 좀 아는 기성 세대의 시각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수도 염려스러울 수도 있다. 의식주라는 말이 있듯이 옷, 음식, 집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이다. 한복, 한식, 한옥이라 각각 이름 붙은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요즘 한복 입기 풍조에 대한 우려의 근원일 것이다. 그런데 한복, 한식, 한옥 중 왜 유독 한복만 가지고 원형을 따질까 하는 의문을 가져봄 직하다.

요즘 한옥, 범위를 좁혀 서울 북촌 한옥을 한 번 따져보자. 북촌 한옥은 한국전쟁 이후 지어진 집이다. 한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조선시대 한옥과 구분해 북촌 한옥을 `도시형 한옥`이라 부른다. 당시에는 요즘 같이 아파트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건설업자들은 당시의 실정을 감안해 `도시형 한옥`을 지어 분양했다. 작게는 스무 평에서 넓어야 마흔 평 정도 되는 땅에 `디귿 자`나 `미음 자` 모양으로 집을 배치하고 가운데 작은 마당을 두었다.

우리 생활양식이 전통적인 좌식에서 의자와 침대를 사용하는 입식으로 바뀜에 따라 북촌 한옥도 점차 양옥으로 바뀌기 된다. 1990년대 말까지 북촌 한옥 수는 계속 줄어 든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민간의 한옥보존운동과 서울시의 한옥보존정책이 효과를 거두어 한옥의 가치를 주민들이 인식하면서 북촌 한옥은 소멸 위기를 벗어난다. 낡은 한옥을 고치는 집이 늘어나고 새로 한옥을 짓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런데 21세기 북촌 한옥은 더 이상 20세기 `도시형 한옥`이 아니다. 한옥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바람이 불었다. 주택이었던 북촌 한옥은 카페나 소품가게 같은 아기자기한 가게로 바뀐다. 용도가 바뀌면 거기에 걸맞게 공간구성도 바뀌는 법이다. 마당과 대청마루가 없어지거나 변형되는 것은 물론 집의 외관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북촌 한옥이 이렇게 원형을 잃고 변형되어 가는데도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다는 분위기다. 한복을 변형해 입는 것이나 한옥을 변형해 사용하는 것이나 우리 것이, 우리 문화가 변형되는 측면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 각자가 머리 속에서 그리는 한복, 한식, 한옥 개념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생각일 뿐이다. 고추가 조선에 소개되기 전 `당연했던` 백김치와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시뻘건 김치가 같지 않다. 흥선대원군이 임오군란 후 청나라에 잡혀 있다가 돌아올 때 입고 온 마고자는 당시로서는 한복이 아니라 만주 옷이었다. 경복궁 집옥재나 창덕궁 연경당 선향재는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은 당시 사람들 눈에는 중국 집이었다. 지금 우리 것이라고 여기는 것 대부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변화를 겪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다만 문화재로 지정된 것만은 그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도 원형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오랜 기간 사용자의 필요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때 최초의 모습을 그 문화재의 원형으로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옛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한 행위를 부정하는 셈인데 과연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렇듯 문화재조차 원형을 따질 때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일상으로 입고, 먹고, 사는 그 자체인 한복, 한식, 한옥이야 말할 것이 없지 않은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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