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으로 풀이하는 예지학은 모두 나타난 모습이나 점치는 시점을 운명의 조짐(兆朕)으로 보고서 길흉을 판단한다. 풀이하는 조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공통성이 있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조짐인 64괘는 점치는 본인이 직접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 은나라 때는 거북 등껍질을 태워서 괘를 얻었고, 주나라에 와서는 시초로 만든 점대를 계산하여 괘를 얻었다. 흔히 심심풀이로 치는 화투점이나 요즘 유행하는 타로점도 길흉이 점괘를 얻는 작업에서 결정되는 것이 역점과 같다. 그래서 64괘를 얻는 그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 고래로 득괘과정이 엄정해야만 정괘(正卦)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주역본의>의 저자인 주희(朱熹)의 글에 보면, 먼저 목욕재계하고, 향을 피우고, 득괘하는 목적을 하늘에 고하고 나서, 정성스레 점괘를 찾으라고 한다. 지성이라야 정괘가 나오고, 산란한 마음으로 뽑으면 망괘(妄卦)만 나온다고 경고한다. 점집에서 점을 치려면 복채부터 먼저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점이 잘 안 맞는 이유도 지성이 없기 때문이다. 화투점이나 타로도 같은 맥락이다. 혹중혹부하는 경우는 지성이 없는 경우에만 생긴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오행학은 부인하면서도 <주역>만은 중요시한 이유가 이 지성(至誠)이라는 항목 때문인 것 같다. 예부터 <주역>을 일명 <세심경>(洗心經)이라고 불러왔던 것도 점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지성이라는 심경(心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성(至誠)을 강조하는 <중용>을 세심경인 <주역>과 짝을 이룬다고 하여 용역(庸易)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학파도 있었다.

독일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칼 융`과 함께 `헬무트 빌헤름`한테 <주역>을 배웠다. 그가 쓴 <유리알 유희>라는 책에는 산수몽(山水蒙)이란 괘가 등장한다. 그 괘사에"몽(蒙)은 형통(亨通)하다. 내가 동몽(童蒙)에게 구하지 않고, 동몽이 나에게 구한다. 초서(初筮)는 가르쳐 준다. 재삼(再三) 점치면 모욕(侮辱)하는 것이고, 모욕하면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점사가 나온다. 이 괘사는 점치는 사람의 진지한 자세를 가르쳐 주는 내용으로, 같은 시간에 재삼(再三) 점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점집을 찾아가는 사람은 무언가 궁금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점을 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점치고 싶어 한다. 사람은 누구나 길점이 나오길 내심으로 바라고 점을 치기 때문에, 다시 점쳐서 길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경험상 재점(再占)부터는 망괘가 많다. 역점업자는 점치러 온 사람을 지성(至誠)이 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채를 선불(先拂)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돈은 아깝게 생각하니까, 복채를 먼저 지불하면 저절로 진지하게 되므로 지성이 된다. 그래서 점괘가 반드시 적중하고, 점치는 영업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부득이 하여 재복해야 한다면, 다음에 시간을 잡아서 다시 점치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부득불 복채를 다시 내라고 한다. 그래야 돈이 아까우니 지성이 되고, 정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원칙은 모든 점에 공통된 현상이다.

그러나 사주나 관상은 출생시에 이미 결정된 팔자(八字)나 용모(容貌)를 대상으로 하여 개인의 길흉을 판단하므로, 역점과는 다르다. 이런 예지술은 지성이 필요없고, 정해진 조짐을 제대로 판단하는 실력이 필요하다. 월정사 조실로 계셨든 탄허스님은 생전에 "옛날 선비들은 <마의상법>이라는 관상책을 교양서적으로 모두 섭렵했다"고 이야기하셨고, 당신도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여러 차례 보였었다. 그는 사람을 판단하는 자료로는 관상과 사주가 믿을 만하다고 하면서, <주역선해>라는 책을 직접 역주(譯註)까지 하셨다.

황정원(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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