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오시마 섬에 있는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은 그 이름처럼 땅 속에 있는 미술관이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점박이 호박 조형물과 대단한 규모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그리고 낡은 시골집에 현대미술이 입혀진 혼무라 집 프로젝트 등이 나오시마 섬의 잘 알려진 명소들이고, 같은 의미에서 지중미술관도 유명한 장소이다. 하지만 이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다른 장소들과 좀 다른 의미에서 특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은, 일상을 둘러싼 시각적 청각적인 요소들과 그로부터 발생되는 잡스러운 판단과 생각들이 `강제로` 차단되는 장소인 것이다.

티켓을 사서 미술관으로 들어가 작품이 있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동선의 시작부터 어쩐지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출 콘크리트로 된 좁은 복도의 미묘한 경사와 외광의 조절은 관람자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요구하는 조건들도 여느 미술관과 같지 않게 까다롭다. 어느 전시실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벽을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가야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체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미술관에는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이렇게 세 작가의 작품만이 전시되어 있고, 이들의 작품에 맞추어 건축을 설계한 이는 침묵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안도 다다오이다.

모네의 <수련>은 공간 전체가 흰 색으로 빛나는 전시실에 놓여 있다. 전시실이 흰 벽으로 이루어진 것이야 놀라울 일이 아니지만, 신을 벗고 들어서야 하는 전시실의 바닥이 작고 흰 대리석 큐브로 이루어져 있음을 느끼는 순간, 이 전시실은 `빛의 화가` 모네의 <수련>에 바치는 극도의 경외심을 바탕으로 헌정된 공간임을 알게 된다. 여러 미술관에서 모네의 작품을 소장품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지중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모네 말년의 수련은 그 공간과 더불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언제나 빛을 이용하는 터렐의 작품에 대한 지추미술관의 공간적 고려 역시 더 말할 필요가 없이 훌륭하다. 그의 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끝도 경계도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꿈속과도 같은,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눈에 익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낯설고도 기이한 그 작품 속에 빠진 관객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잠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또 한 사람의 작가, 월터 드 마리아의

놀라움과 혼돈과 의문에 휩싸인 채 지중미술관의 전시 작품들을 모두 관람하고 지상에 발을 디디면, 잠시 멈추었던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마치 무덤처럼 지하에 건설된 이 미술관에서는, 삶과 죽음, 신체와 정신, 자연과 인공과 같이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가치와 의문들이 저절로 마음 가운데 그려지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름 높은 이 세 작가의 작품은 세계의 여느 미술관에서나 쉽게 발견되지만, 이 작품들을 특별히 잊을 수 없는 시공간의 체험으로 만드는 장소가 지추미술관이다.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