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매년 성탄 시즌이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어김없이 TV에 방영돼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줄거리를 꿰고 있다. 주인공인 스크루지는 일상생활 속에서 구두쇠라는 말을 대신해 자연스럽게 쓰일 정도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를 경멸하는 인물이다. 구부러진 매부리코에 충혈된 눈, 핏기 없는 입술,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는 돈만 아는 수전노로서 스크루지의 인상을 더욱 강하게 한다. 헐값에 사무실 직원 크라칫을 부려먹고 애써 찾아온 조카 프레드를 냉대한다. 세상 모두와 벽을 쌓고 살아가던 그는 크리스마스의 유령을 만나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고 하룻밤새 개과천선하게 된다. 훈훈한 마무리로 아름다운 동화처럼 느껴지지만 소설을 들여다 보면 전체 분위기는 어둡다. 영상물에서도 어느 정도 묘사되지만 저임금노동, 아동노동 등 노동착취, 의료복지에서 소외된 장애인 등 소설이 발표된 1843년 당시 영국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 혁명으로 농민들이 대거 도시노동자로 편입됐다.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평균 근무시간은 12시간을 넘었고 휴식시간조차 없었다. 자본가들은 임금이 싼 여성과 어린이들을 주로 고용했다. 노동자들을 채찍질(독려의 의미가 아니라 실제 채찍으로 때렸다)하는 등 비인간적인 행위도 많았다. 당연히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죽거나 다친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 하나의 나사처럼 교체돼 나갔다.

130년 정도가 지난 1970년 한국에서 한 노동자는 하루 14시간씩 의류 공장에서 일했다. 일당은 차 한 잔 값인 50원이었다.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경찰에 제지 당하자 스스로의 몸을 불살랐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가 외친 말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였다. 태안화력발전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 씨는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월 160만 원을 받았다. 50년 가까이 지났지만 처우가 크게 좋아지진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점이다. 비용절감을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서부발전(주)의 정규직 평균 연봉은 2016년 결산 기준으로 9080만원이다. 임원들은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직원 몇 명 더 못 뽑을 정도로 경영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21세기 한국은 19세기 스크루지의 망령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용민 지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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