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김지현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처음부터 간호사가 꿈은 아니었다. 시를 읽고 책을 보는 것이 좋아 문과에 지원했고 당연히 문과에 관련된 일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다시 공부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부모님께 통보를 하고 나니 막상 눈앞이 캄캄하고 두려웠다.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 가족의 권유로 건양대 간호학과가 개설된 것을 알게 됐고 이후 간호사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누군가의 권유를 듣는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방향을 잃었을 때나 자포자기할 때, 더 이상의 의욕이 생겨나지 않을 때야말로 텅 비어 버렸을 때 채워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그림을 그려갔던 필자의 대학생활은 간호학과 학생으로서 짊어져야 할 일이 많았다. 기본 간호학을 배울 때 서로의 팔을 내어주며 정맥주사를 연습했던 일, 의사소통론을 배울 때 속 얘기를 꺼내다 울었던 일, 생화학이 어려워 매 번 머리를 쥐어뜯던 일, 약리학을 잘했던 친구가 부러웠던 일 등 간호학과 2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양대병원 간호사가 됐다. 2000년 개원과 동시에 입사한 간호사로서의 생활도 녹록치만은 않았다. `아가씨`, `언니`라는 호칭이 더 익숙했고 주 6일제 근무로 내리 15일의 주간 근무를 해야 하는 날도 있었고, 야간근무를 연이어 5일씩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혼자서 30명의 환자를 봐야 하는 날도 있었고, 인계를 깜박해 환자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간호사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직업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시무룩한 얼굴로 병원을 출근했다가도 "우리 김 간호사 왔어, 내가 우리 김 간호사 언제 오나 기다렸지", "어머, 우리 김 간호사는 주사도 잘 놔. 하나도 안 아파" 하는 말에 저절로 웃음이 나고 일하는 것이 신났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아는 지식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일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회포를 풀고 야간 근무가 끝나면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필자를 잘 다독여주는 선배들이 있어 좋았고, 믿고 따르는 후배가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수 년이 지나갔다. 대학생 시절 2년만 하고 그만두겠다던 생각도, 간호사가 나에게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됐다. 7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다리가 불편했던 노인 환자 한 분이 퇴원 후 병동으로 찾아왔다. 웃으며 말을 걸어줬던 것이 큰 위안이 됐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뛰어난 간호능력이 아닌 나의 미소가 그 환자의 마음에 남았나 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좋은 간호사로 기억되는 것이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간호부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당연히 환자와 보호자에게 응대하는 부분보다 파트장들과 타 부서장들과 더 많이 대면하고 있다. 까마득한 예전 기억으로 후배 간호사들에게 환자의 말에 공감하고, 미소와 친절로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듣기 싫은 잔소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고 내가 누군가에게 밝은 에너지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지현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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