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과 박물관에 들러야만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간단한 행동으로도 내 몸에 체현된 인류 발자취를 경험할 수 있다. `걷기`이다. 인류가 언제부터 두 발로 걸었는지는 불분명하다. 700만 년 전부터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학자는 350만 년 전을 주장한다.

시기야 어쨌든 인류는 걸으면서 사람다워졌다. 걷기는 매우 기술적인 메카니즘이 작용한다. 간호학대사전에 따르면 걷기는 하지의 관절, 근의 연속운동에 의해서 몸 중심의 전방 이동을 도모하는 행위이다. 슬관절, 족관절, 고관절 등 다수의 관절이나 골반에서 동시에 일어나며 협조되어 제어된 과정이기 때문에 이들 기관이나 조직, 또는 그들을 지배하는 신경 그 자체에 장애가 일어나면 중대한 보행장애를 초래한다.

걷기에 하나를 더하면 역사성이 더 깊어진다. `계단`이다. 고대 종교사원부터 현대 빌딩까지 건축 요소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계단. 계단을 통해 사람은 장소의 이동 뿐 아니라 상승을 경험한다. 아무리 건축물이 커지고 현란해져도 옛날이나 오늘이나 한 사람이 자기 힘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의 높이는 큰 변화가 없다. 만약 지금 누군가 두 발로 계단을 오르고 있다면 수백만 년 인류 진화의 시간을 응축해 재현하는 셈이다.

걷기는 건강에도 실용적이다. 일본 의사인 나가오 가즈히로는 자신의 책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에서 아토피성 피부염, 변비, 우울증부터 고혈압, 골다공증, 암까지 병의 90%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걷기의 힘을 설파했다. 저자는 아파서 못 걷는 것이 아니라 걷지 않아서 아픈 사람들이 바로 현대인이라고 일갈한다.

중독이라고 할 만큼 걷기에 몰입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 배우이자 감독, 화가인 하정우는 `걷는 사람, 하정우`란 책을 통해 자신의 걷기 경험을 소개했다. 책에는 하루 1만 보를 넘어서 10만 보, 16만 보를 걸었다는 친구 이야기도 나온다. 티베트어로 사람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고 한다. 사람의 한자어 인(人)도 걷는 사람과 닮았다.

미세먼지 걱정이 있지만 2019년 더 많이, 자주 걷자. 혼자서, 때로는 여럿이서. "혼자 걸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엄숙한 발걸음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의미를 갖게 된다." 멕시코 해방군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말이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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