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전에 거주하는 A씨에게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 통화에서 자신을 검찰 직원이라고 소개한 상대방은 A씨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으니,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맡기라고 지시했다. A씨는 통화 속 상대방의 말대로 자신의 계좌에서 3300만 원을 인출한 뒤 대전의 한 카페에서 금융감독원을 사칭한 남성을 만나 3300만 원을 모두 건넸다. 이 남성은 위조한 공문까지 제시하며 A씨의 의심을 누그러뜨린 뒤 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대전에 거주하는 B씨도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검찰 사칭 전화를 받고 현금 1600만 원을 인출했다. B씨는 전화 통화 속 상대방의 지시에 따라 인출한 돈을 자신의 집 냉장고에 보관한 뒤 신분증을 변경하러 동사무소로 향했다. B씨가 집을 비운 사이 한 남성이 B씨와의 통화 중 알아낸 B씨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이용해 집으로 침입해 냉장고에서 1600만 원을 모두 챙겨 달아났다.

피해자 A씨와 B씨 모두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별다른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가 날로 늘어가는 가운데 최근 해외에서 `010` 번호로 걸려오는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대전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1295건으로 2017년 975건 대비 32.8% 증가했다. 피해액도 2017년 103억 8000만 원에서 지난해 150억 2000만 원으로 44.7% 늘었다. 범죄 유형별로는 검찰, 국세청 등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기관사칭형`이 249건, 금융기관을 사칭하며 낮은 금리로 대출을 권유해 돈을 가로채는 대출사기형이 1046건을 차지했다.

경찰에 따르면 대다수의 보이스피싱 조직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에 본부를 차린 뒤 국내에 전화번호변작중개소를 두고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를 마치 국내 전화인 것처럼 `010` 번호로 조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010` 번호를 보고 국내전화로 오인해 전화를 받은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정부기관을 사칭하거나 저금리로 대출을 권유하는 수법으로 돈을 가로챘다.

사람들이 `070` 등의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잘 받지 않지만 `010` 번호로 시작되는 전화는 별 의심 없이 받는 데다, 통화 속 상대방이 수신자의 민감한 금융정보까지 알고 있어 피해가 속출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주로 검찰, 금감원, 금융기관 등의 직원을 사칭하며 접근해 보이스피싱 대상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거나 개인정보 유출이 염려된다며 계좌이체나 금융정보를 요구해 돈을 편취한다. 또는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을 대상으로 낮은 이자로 대출이 가능하다며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신용등급 향상을 위해 제2금융이나 카드론 등으로 기존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고 대상을 유인해 돈을 갈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계자는 "요즘 보이스피싱은 대부분 해외에 콜세터를 두고 중개소를 이용해 국내에서 전화를 건 것처럼 위장한다"며 "내 정보를 잘 알고 있거나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정부기관을 사칭하면 보이스피싱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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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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