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시대 침략국가와 식민국가의 거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거래 등 역사 속에서 공정하지 못한 상황은 계속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은 비단 노동력과 자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세계에서도 불공정은 존재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지식들 중에는 이렇게 부당하게 기술된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일 것 같은 수학이나 물리학이라는 학문도 예외가 아니다.

수학문제와 풀이가 적힌 고대 이집트 수학책이 있다. 아메스라는 사람이 저자로 알려져 `아메스 파피루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아메스 파피루스를 검색하면 `린드 파피루스`도 같이 검색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헨리 린드가 이집트에서 구입했기 때문에 저자의 이름이 아닌 `린드 파피루스`라고 부른다. 공정하지 못한 지식이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조차 린드 파피루스로 소개한다.

백인 우월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기술된 지식들은 물리학에도 있다. 갈릴레오의 관성, 뉴턴의 운동법칙, 드브로이의 물질파 등 물리학 지식들에는 과학자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람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하광학 지식들에는 과학자의 이름이 없다. 반사와 굴절, 볼록렌즈, 오목렌즈 등을 대해 배우지만 아무도 누구의 업적인지 모른다. 유럽 사람이 아닌 아랍인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실린 반사와 굴절, 거울과 렌즈, 무지개 관련 지식들은 1000년 경에 살았던 이븐 알하이삼의 업적이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회전체를 포함한 구분구적분을 지도할 때 사용하는 방식도 이븐 알하이삼이 고안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과서에서는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미적분학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각자 독립적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돼 있다. 우리도 유럽인들이 체계화한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옮겨 가르치기에 급급했다.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기술된 이러한 지식은 공정하지 않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쇠공을 떨어뜨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검증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일부 물리 교사들은 과학적인 실험이 갈릴레오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갈릴레오보다 600년 앞선 이븐 알하이삼이 가설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과학 방법론을 제안했다. 더 나아가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해 수많은 광학 지식들을 체계화시켰다.

교과서가 이븐 알하이삼에게 가혹한 반면 갈릴레오에게는 너무 관대하다. 갈릴레오의 관성 개념은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기술돼 있다. 어떤 점이 불완전한지, 뉴턴의 관성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는 전혀 언급이 없다. 갈릴레오가 제안한 관성의 개념을 왜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불러야 하는지 학생들도, 물리 교사들도 모른다.

이는 갈릴레오가 유럽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과학자기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역학의 기틀을 마련한 과학자이기 때문에 우상화 된 것이다. 이 또한 공정하지 못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물리학 교과서에 이븐 알하이삼의 업적을 공정하게 기술해야 한다. 아울러 물리학의 첫 단원으로 광학을 권유한다. 광학은 가설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계화됐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역학 단원에서는 갈릴레오의 관성 개념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것을 구입할 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공정무역이 시작됐듯이 유럽인,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기술된 물리학을 공정하게 가르치기 위한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김종헌 대전과학고 교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