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판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을 표명하기 위해 연명으로 작성한 문서를 말한다. 연판의 방법은 각자의 성명을 적고 도장 또는 지장을 찍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서명운동 등의 경우에는 자기 성명만을 적기도 한다. 보다 강력한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피로써 서명을 대신하는 혈판장을 작성하기도 한다.

연판장의 시초는 일본 바쿠후시대에 지방 영주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영주를 탄핵하기 위해 서명을 곁들여 보낸 문서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 4·19혁명 이후 젊은 장교들이 연판장을 돌리려다 실패한 적이 있고 1999년 2월 `심재륜 고검장 파동`과 검찰의 법조비리 수사 발표에 맞춰 검사들이 연판장을 돌렸다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1998년에는 서울의 A초등학교 학생들이 담임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사를 바꿔달라는 연판장을 돌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올 초 대전미술협회는 7년간 이응노미술관을 이끈 이지호 전 관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려 논란을 일으켰다. 미술협회측은 "이 전 관장이 지역미술계와 소통을 하지 않고, 스스로 관장직을 내려놓지 않은데 대한 여론을 전달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여론을 전달하는 방식과 방법이 과연 정당했냐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소통 부재를 문제삼아 연임 반대를 한 것이 자칫 후임자를 내세우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 아니냐는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술협회가 내놓은 연판장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중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연판장에 동의한 단체나 인사는 모범적으로 이응노미술관장 공모에 응하지 않았어야 했다. 최종 인사로 낙점돼 관장직을 잘 수행해도 이 자리를 탐내는 또다른 누군가도 `연판장`이라는 카드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연판장에 이름을 적을때는 자신의 주장을 표명함과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함께 지겠다는 일종의 자기 선언서와 같아야 한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누구 때문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연판장`이라는 화살을 쏜 자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원세연 취재 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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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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