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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창조적 파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19-04-15기사 편집 2019-04-15 07: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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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세종경제포럼에서 충남대학교 오덕성 총장은 4차 산업에 대한 강연 중 사진을 띄우며 뉴욕거리 풍경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 속 1900년 뉴욕의 거리에는 마차가 거닐고 있었지만, 불과 13년 뒤에는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동차가 마차를 완벽히 대체하는데 불과 1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대부분의 마부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관련 산업은 급속도로 몰락했다. 이처럼 기술 혁신은 기존의 삶을 붕괴시키면서도, 인간의 삶 자체는 진일보시키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인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미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성장한다"고 주창했다. 낡은 것은 계속 파괴되고, 새로운 것은 끊임없이 창조되면서 경제구조가 혁신되어 간다는 것이다. 마차를 자동차가 대체하고,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노키아가 몰락했던 일 모두 창조적 파괴의 사례다.

창조적 파괴는 자동차가 발명되고, 인터넷이 보급되는 것과 같이 기술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발명'과 맥을 같이 하지만, 파괴라는 단어에서 눈치 채듯, 이면에는 늘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자동차가 마부라는 직업을 사라지게 했듯이, 최근엔 공유차량이 대중교통을 위협하고, '카풀'이라는 신개념 업종이 기존 택시업계와의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 역시 슘페터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적 파괴다.

창조적 파괴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들에 대한 '대체제'이기 때문이다. 수요가 한정된 시장에서 대체제가 나타나면 시장은 효율적으로 변하지만,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효율적인 재화가 대중에게 선택 받고, 오래도록 유지되어온 기득권이 상실되는 것은 논리적 관점에서나, 경제학적으로도 당연한 사실이다.

기업인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하다. 기업은 저마다 혁신성장으로 창조적 파괴를 주도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통해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변화에 인색해 도태되고 사라지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공은 좋은 것이고, 실패는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성공은 실패와 혼재돼 있어, 실패가 없다면 성공도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기업의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여야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벤치마킹 사례와 솔루션이 나올 수 있다.

혁신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기업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느 나라를 보더라도 국가가 직접 혁신에 나서 성공한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을 변화시킨 창조적 파괴는 대부분 기민한 사업가의 아이디어와 기업의 새로운 도전으로부터 시작돼 왔다. 실패를 없애려는 규제는 불필요하며, 단순히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시도했던 기술드라이브 정책도 이제는 때 지난 정책에 불과하다.

성장이 분배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위해서 국가는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길을 터주어야 한다. 기업을 옥죄는 것이 아닌, 기업을 예우하고 응원하는 문화, 실패에 인색하지 않고 1%의 가능성에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정책이야 말로, 성장하는 국가의 필수요소다.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는 "'갈등'은 있는 그대로의 거부이거나, 있는 그대로부터의 도피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와 직면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갈등도 점점 복잡해지고 풀리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다양한 영역의 기득권에 기술이 도전하는 일, 그로 인한 변화를 인지하는 자세, 또 기업의 기술혁신과 창조적 파괴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 모두, 우리가 평생 맞닥뜨려야 할 숙명이 아닐까.

이두식 세종상공회의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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