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막말정치 가관

우리 속담에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폴란드 명언 중에선 `셔츠는 다리 사이에 단단히 여미고, 혀는 이(齒) 사이에 단단히 여며라`는 말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혀(舌)가 갖는 해악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만큼 혀를 잘 놀리라는 뜻일 게다. 혀는 그 길이가 삼 촌(三寸·세 치)에 불과하지만 혀를 잘못 놀려서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혀를 잘못 놀려 남을 험담하고 비방하며 헐뜯는 사람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요즘 정치권이 꼭 그렇다. 혀를 통해 내뱉는 정치인들의 막말이 도를 넘어 국민의 귀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거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으로 불붙은 여야 갈등이 막말정치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저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유한국당을 향해 `도둑놈들한테 국회를 맡길 수 없다`며 험담을 퍼부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에겐 `한번 혼나 볼래`라며 버럭 소리를 친 모양이다. 동료 의원을 도둑으로 모는 건 좀 지나치다 싶지만 오죽했으면 이러랴 하는 심정도 이해가 간다. 야당도 별만 다르지 않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한 나 원내대표 발언에 이어 수석을 빼고 `김정은 대변인`으로 반복해 불러 공분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을 김정은 대변인으로 비화한 것을 두고 일부에선 너무 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막말·망언은 역대 정권마다 창궐하다시피 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거나 노무현 대통령을 빗대 `육00놈`, `개0놈`이란 욕설도 난무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쥐박이`, `땅박이`란 표현이 스스럼없이 쓰였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란 뜻의 `귀태(鬼胎)`란 막말이 정치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막말정치의 끝판 왕을 꼽으라면 단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다. 홍 전 대표는 혀를 잘못 놀려 권력과 명예를 한 순간에 날린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작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곤 남북 정상회담을 `위장 평화 쇼`라고 폄훼해 두 선거 모두 졌다. 홍 전 대표는 자신이 막말 프레임에 갇히게 된 건 노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고 한 말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개인을 겨냥한 막말은 그렇다 치고 국민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막말도 난무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5 주기를 맞아 유가족을 향해 야당 정치인들의 `징하게 해 처먹는다`,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이제 징글징글하다`고 한 막말은 국민 분노를 자아내고도 남았다. 혀를 잘못 놀린 이들 정치인들이 다시는 발 못 붙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비난 여론을 맞아도 싸다.

이처럼 정치인들의 막말은 지지층 결집 효과 때문에 의도된 발언이란 시각도 있다. 실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이 있고 난 후 한국당의 지지도가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막말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보다는 자기편을 향한 호소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막말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정치인은 말(言)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그런 연유로 혀끝의 말을 가려할 줄 알아야 한다. 혀를 잘못 놀려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말란 얘기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고 살 순 없지만 필요 없이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원망을 사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하는 말이다. 곧고 강직한 말은 아무리 조용하게 말하더라도 허물을 바로잡고 모자람을 채워 준다. 공자는 일찌감치 `일상에서 말을 믿음직스럽게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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