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소정당 패스트트랙 국면 군불때기 나서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의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이후의 일이다. 이 선거제 개편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명부제, 석패율제 도입 등이 골자다.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 등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과는 큰 차이다. 여야 4당은 표심을 가감없이 담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 개편안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선거제 개편안은 28개의 지역구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야 의원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본회의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국당이야 패스트트랙 자체를 반대하고 있으니 차치하더라도 여야 4당 역시 다른 각도에서 패스트트랙의 궤도 이탈을 전망하고 이들이 많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선거제 개편안은 의석을 늘리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의석이 감소한다. 몇몇 의원들이 선거제 개편을 전제해 따져본 결과다. 게다가 자신의 선거구가 없어져야 하는 의원들로서는 개편안을 마뜩찮아 한다. 분란의 불씨가 내재돼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패스트트랙을 감행했다. 사법개혁의 단초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고육책이란 평가가 뒤따른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직접적으로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역구는 253석을 유지하고 비례대표를 늘려 총 의원수를 늘릴 것을 주장한다. 지역구를 줄이면 비례성과 대표성이 훼손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승자독식의 양당제 폐해 불식과 민의 반영을 위해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평소 제3세력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확고한 지지기반이 없어 고민했던 그로서는 패스트트랙이 돌파구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평화당은 더욱 적극적이다. 주요 지지기반인 호남지역 지역구가 대폭 줄기 때문이다. 유성엽 원내대표는 이를 공론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비용이 문제라면 세비를 깎는 대신 의원수를 늘리겠다고도 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다는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정치 9단이란 박지원 의원은 의원정수를 늘리지 않고서는 선거제가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고 본다. 선거제 개편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정의당은 원래부터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했다.

문제는 여론이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늘리는데 절대 반대다. 일만 잘한다면 수십명 늘리는 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는 박하고 불신은 크다. 국민과 지역사회를 위하기보다 자신의 입신양명과 이해타산에만 몰두하고 있고, 정치가 아니라 정쟁만 일삼고, 국민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되레 피곤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원정수를 늘리자는 것은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정치권이 이런 국민의 심정을 모를 리는 없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의원정수 확대론을 경계했다. 그는 의원을 늘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자`를 늘리지 말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당은 비례대표를 없애고 지역구만 270석으로 하자고 한다. 결은 다르지만 의원 늘리는 건 부담이란 것이다. 하지만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패스트트랙은 민주당만으로 불가능하다.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 등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당이 언제까지 그들 요구를 외면할 수 있을까.

여의도를 슬슬 달구는 의원정수 확대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찬반이 혼재하지만 정치공학적 이해와 셈법이 결부되어 있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이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성사시켜 내년 총선 전에 결과물을 내놔야 할 입장에서 본다면 군불을 때기 시작한 의원정수 확대론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해가 일치되면 그들은 국민의 눈치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비 인상 같은 밥그릇은 앞장서 챙겼듯이 말이다. 김시헌 서울지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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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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