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아서 밀러는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1949년 처음 공연된 후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극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인류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은 `산업사회의 인간 소외`라는 이 작품의 주제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윌리 로먼은 세일즈맨이다. 그는 남들에게 잘 대해주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성공해 큰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왔다. 대출금이 남아 있지만 내 집도 있고 착한 아내와 희망을 주는 두 아들이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로먼의 삶은 무너져 간다. 수입은 점점 줄어들었고 아들들도 잘못된 길로 빠져 버린다. 30년 이상 근무한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된 후 상실감과 피로감이 밀려든다. 절망 속에 광기에 사로잡힌 그는 아들에게 보험금을 남겨주기 위해 한밤중 자동차에 올라 죽음의 질주를 하게 된다.

인간 소외는 인간보다 물질에 가치를 두는 물질주의에서 비롯된다. 과거 인간사회에서는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이었다. 단지 도덕적인 관점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실생활에서 사람이 많을수록 공동체 생산력이 높아졌다. 그러나 기술 발달에 따라 물질이 인간보다 더 유용해지는 현상이 생겨났다. 주판으로 돈을 세던 회계원들이 컴퓨터로 대체되는 것처럼 기계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됐다. 상대적으로 인간의 가치는 절하됐다.

처음에는 물질과 경쟁에서 패배하는 게 드물었지만 산업이 고도화되자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가치는 폭락했다. 이는 사람을 사회로부터 배제시키고 결국 인간 존엄성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돈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강도들도 결국 물질의 가치를 인간보다 높게 두기 때문에 나온다.

최근 잇따라 일어나는 강력범죄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인간 소외`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PC방 살인사건이나 일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무차별 테러 사건은 고립된 인간이 얼마나 반사회적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그 위험성을 보여준다.

연극에서 로먼은 세일즈 견본이 들어 있는 듯한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들고 나타난다. 가방 속 내용물이 무엇인지 희곡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가 파는 상품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 해석될 수 있는 여지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조금씩 떼어서 파는 세일즈맨이다. 인간을, 이웃을, 공동체를 돌아보지 않으면 `세일즈맨의 죽음`은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이용민 지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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