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의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정독하듯 악보를 읽고 연구를 시작한 뒤 수백 번, 수천 번의 연습을 반복한다. 그리고 암기한다. 그리고 보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기 위하여 프레이즈(한 단락의 멜로디 라인)를 그려가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로 작품을 재해석을 한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클래식은 살을 깎는 고통과 인내가 수반된다. 한 시간의 연주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기 위해서 그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연주자들에게 "클래식을 정말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마냥 행복한 마음으로 "Yes!"를 외치며 연주에 임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연주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매 번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보통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청중과 달리, 연주자들에게는 다른 접근법으로 클래식이 다가올 것이다. 한음의 실수로 음악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연주자라면 누구나 완벽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대울렁증과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그들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음악세계를 관객들에게 들려줘야만 한다. 외로운 혼자만의 고행의 길, 그 마지막 관문인 무대에서 한 시간의 연주를 선보여야만 하는 입장에서 그들은 과연 클래식을 정말 좋아할까?
공연을 찾아온 관객은 그들의 연주를 한 두 번 감상할 수 있지만, 연주자는 악보를 외울 정도로 자신의 연주를 계속해서 들으며 작곡가의 마음을 화성과 선율로 느낀다. 그리고 연습을 하면서 연주자 스스로 감동받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것은 고통과 인내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아마도 그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그 음악작품의 작곡자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수 백 번, 수 천 번의 연습을 한 연주자 혹은 음악애호가 정도가 있을 것이다.
마치 그들에게 클래식은 연인, 배우자 혹은 자식과 같은 존재처럼 면밀히 서로 알고 지내는 관계와 같다. 클래식은 고통스럽고 힘들고 지치게도 만들지만, 그들에게 결국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끌어안고 동행해야하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한 시간의 공연을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헌신한, 클래식을 정말 사랑하는 그들에게 연주에 대한 무한한 감동과 존경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이상철 공연기획자·(주)스펙트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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