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방 알지? 내가 거기 산다. 혼자 차비하고 밥 먹을 정도만 돼도 살겠다."

대학시절 활동했던 연극동아리에서 만난 선배가 푸념을 늘어놨다. 꿈이 많아 별명이 `피터팬`이었던 그 선배는 졸업 후 취업 대신 극단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도 더 힘들었다고 했다. 열망하던 연극배우가 됐지만, 얇은 지갑을 볼 때마다 지난 꿈을 잊는다고 했다. 먹는 일은 본능이면서도 당연해서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잠깐만 가로막히면 인간은 괴로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연극인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연극을 하고 싶어 무대에 오르지만 그들도 `먹는` 존재이기에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최근 대전에서도 세금을 들여 연극인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소규모 극단보다 크고 질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는 시립극단 설립 논의가 한창이다. 8개 특·광역시중 아직 공립극단이 없는 곳은 대전, 울산, 세종 뿐이라고 하니 연극인들은 억울할 만도 하다.

그러나 충분한 논의 없이 너무 서둘러서는 곤란하다. 당장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시립극단 설립을 재촉하다가 시민들을 뒷전에 두거나 비(非)공립 극단원들을 소외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시립예술단의 `먹고 사는 문제`가 오히려 공연의 질을 떨어뜨린다거나 집안싸움을 부추기는 꼴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선발 공립극단들이 겪은 문제들을 되풀이할 것이라면 애초에 접는 편이 낫다.

최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타 지역 공립극단 관계자들도 기꺼이 대전에 방문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살짝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후발주자라는 점은 오히려 행운이 될 수 있다. 이미 대부분의 지역이 공립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주자에게는 반드시 과감하고 획기적인 무언가 있어야 한다. 타 지역 공립극단의 장단점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시민들을 충분히 설득한다면 더욱 견고한 시립극단이 될 것이다.

급히 뛰다가 넘어지는 것 보다는,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시민들과 한 걸음씩 걸어나가야 한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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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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