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각종 축제, 체육행사, 문화행사 등 수많은 행사장에선 어렵지 않게 단체장 얼굴을 볼 수 있다. 지역구 민원 현장과 행사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업무시간 이후와 주말에도 스케줄이 빡빡한 이유다.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만 형식적인 행사 때문에 정작 본업인 행정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다.

9일 대전일보가 8월 한달간 충청권 광역시장·도지사와 광역의회 의장, 시장·군수·구청장 등 38명의 일정을 조사해보니 평일 업무시간(오전 9시-오후 6시) 이외 일정이 평균 11.6건, 주말 및 공휴일 일정이 평균 9.7건으로 나타났다. 한달에 21건 정도로 휴가와 해외 출장 업무가 집중되는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휴일도 없이 거의 매일 1건씩은 공식일정이 잡힌 셈이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주중 업무시간 외 공식일정이 24건, 주말 및 휴일이 일정이 8건으로 4명의 시도지사 중 가장 분주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주중 1건, 휴일 4건이었고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주중 9건, 주말 7건의 업무 시간 외 일정을 소화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평일 퇴근 후 10건, 주말과 휴일 4건의 공식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나마 8월이 1년 중 행사 참석이 가장 적은 달이라는 게 시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공식일정은 대부분 주최나 후원 등 시와 도가 관계있는 행사들로 짜여져 있고 비공식적으로 움직이는 주민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타 기관 및 단체와 기업, 자생 조직별로 주관하는 행사들까지 고려하면 쉴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일선 시장·군수, 구청장들은 더 바쁘다. 8월 평균 주중 업무시간 외 일정이 25.2건, 주말 및 휴일 일정이 21.2건을 기록했다. 주말과 휴일엔 오전 9시부터 행사장을 돌기 시작해 늦을 때는 오후 10시가 넘어야 하루가 마무리될 때도 있다. 쉴 새 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여름철이면 셔츠 서너벌은 기본이고 양말도 몇번이나 갈아신는다. 행사가 많다보니 시간상 기념사나 축사만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주민과 소통의 의미도 없다. 특히 지역 현안 해소와 대외협력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잡아먹어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문제다. 이들은 "기관과 사회단체의 과도한 행사참여 요구로 인해 업무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이는 결국 지역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광역의회 의장들은 상대적으로 공식일정이 적었지만 민원인들과 만남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김종천 대전시의회 의장은 "공식일정 외에 비는 시간에는 30분 단위로 민원성 접견이 잡혀 있다"며 "주말에도 각종 행사들이 잡혀 있어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은 한달에 1-2번도 안 된다"고 말했다.

단체장들도 행사 참석을 줄이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가이면서도 정치인인 특성 탓이다. 지역 발전에 골몰하다가도 다가오는 선거를 생각하면 행사장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 행사참석 요청을 받고 불참하면 `당선되더니 사람이 바뀌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불필요한 행사 참석을 줄이려면 단체장의 의지와 시민의 협조가 함께 필요하다. 단체장 스스로 기준을 정해 행사 참석을 자제하는 한편 단체장이 와야 행사 품격이 높아진다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용민·이호창·김용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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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종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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